2018. 1. 6. 17:02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

1923년 5월 1일이 '어린이날'로 처음 제정됐을 때 어린이 운동가들이 외친 구호다. 아이들에게 뭘 해주자는 게 아니라 뭘 하지 말자는 부작위의 호소였다. 뒤집어보면, 90여 년 전 우리 아이들 처지가 얼마나 고달팠는지 알 수 있다. 제1회 어린이날에 아이들의 가장 간절한 희망사항 10가지를 담아 배포한, '어른에게 드리는 선전문' 속에는 '이발이나 목욕을 때맞춰 해주세요'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해주세요' '산보와 소풍을 가끔 시켜주세요' 같은 것도 있었다(동아일보 1923년 5월 1일자). 이런 외침도 어린이날만 지나면 잠잠해졌다.


1956년 어린이날 행사 때 땡볕 아래서 매스게임을 하는 어린이들(왼쪽 사진·조선일보 1956년 5월 6일 자)과 1963년 어린이날 나들이 나왔다가 미아가 되어 미아보호소에서 새우잠을 자는 어린이들(동아일보 1963년 5월 6일 자).
1956년 어린이날 행사 때 땡볕 아래서 매스게임을 하는 어린이들(왼쪽 사진·조선일보 1956년 5월 6일 자)과 1963년 어린이날 나들이 나왔다가 미아가 되어 미아보호소에서 새우잠을 자는 어린이들(동아일보 1963년 5월 6일 자).


















초창기 어린이날이란 잔칫날이라기보다는 '어린이날이란 무엇인가'를 어른들에게 알리는 날이었다. 전국 거리를 행진하면서 전단지 등을 나눠주는 일을 어린이들이 했다. 1925년 행사 땐 어린이 30여 만명이 길거리에 나갔다. 1933년 어린이날에 소년단 소속 어린이들은 새벽 6시부터 어린이날을 고하는 새벽나팔을 분 뒤, 선전지 배포에 총동원됐다. 평소보다 몇 배 고단한 하루였다.

광복 이후엔 어린이날 행사들이 볼거리 위주로 크게 열렸다. 이승만 정권 시절 어린이날마다 서울운동장(옛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대규모 행사 역시 아이들을 힘들게 했다. 초대형 매스게임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1955년의 경우 초등학생 5000여 명은 몇날 며칠을 수업도 줄여가며 연습한 '합동체조'를 이 대통령과 고관들 앞에서 선보였다. 얻어맞아 가며 연습했다는 말도 있었다. 이날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어린이들이 땡볕 쏟아지는 운동장에서 진땀을 뺐다. 보다 못한 아동문학가 이원수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아이들이) 알아듣기도 힘든 축사 강연을 들었으며 무의미한 고행을 했다… 어린이날이 아니라 아동 곤욕의 날"이라며 당국자들을 맹비난했다(조선일보 1955년 5월 10일자). 그러나 이런 지적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1956년에도 어린이 5000명이 합동무용에 동원됐다. 공연 도중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기념식이 중단됐다. 운동장에서 고생하던 어린이들은 아마도 좋아했을 것이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새싹회 대표)은 "어린이날엔 어린이들 재롱을 어른들이 구경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알맞은 얘기랑 노래랑 춤이랑 연극이랑 들려주고 보여주는 잔치를 베풀어 줘야만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어린이날 행사에서 어린이들의 고생이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매스게임 동원은 1980년대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이날이면 나들이 나왔다가 부모를 잃어버린 미아도 1000명 안팎씩 발생했다. 1963년 어린이날엔 미아 105명이 그날 밤까지도 부모를 못 만나 적십자 미아보호소에서 새우잠을 잤다. 

고달픈 어린이날의 과거는 역사 속으로 흘러갔고, 오늘날  어린이날이면 많은 아이가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도 지난주 보도에 따르면 세계 16개국 12세 아이들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최하위였다고 한다. 

특히 '외모에 대한 불만'이 12세들의 행복도를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외모 중시 풍토가 아이들 행복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방정환 선생님이 이런 사실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2/2017050203074.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