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이야기다. 사악한 용(龍)을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용잡이 학원’이 있었다. 학생들은 비싼 수업료를 내고 기초부터 고급 과정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연마했다.
졸업반 학생 하나가 스승에게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용은 어디 있습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용은 없다.” 화들짝 놀란 학생이 “그러면 지금껏 배운 공부가 무용지물이란 말씀입니까?”라고 따지자 스승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너도 나처럼 학원을 차려 학생들을 가르치면 될 것 아니냐.”
대학 공부, 특히 인문학이 용잡이 학원 수업을 닮았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이에 대해 인문학 교수나 소위 힐링 전도사들은 인문학이 상상력을 키워 주는 쓰임새가 큰 학문이라고 역설한다.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대학에서 철학을, 페이스북 창업주인 마크 저커버그가 심리학을 전공한 것을 즐겨 예로 든다.
그런데도 왜 기업들은 잡스나 저커버그를 배출한 인문사회계를 외면하고 이공계나 상경계 졸업생을 선호할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고교 시절 잡스는 HP 인턴으로 컴퓨터 기초를 다졌고, 저커버그는 컴퓨터 신동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 성공의 원동력은 컴퓨터 공부다. 인문학 지식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일반 대졸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 일간지 기자가 “인문계 인재를 뽑아 직무 능력을 키워 주면 되지 않느냐”고 어느 재벌 그룹 인사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그 담당자는 “인문계를 뽑아 하나부터 열까지 직무 교육을 하느니 차라리 이공계를 뽑아 인문학 강의를 해 주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둘째, 잡스와 저커버그는 천재 중의 천재다. 천재(天才)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재주라 대학에서 뭘 전공해도 성공한다. 보통의 학생들은 이런 예외적인 천재의 성공 스토리에 현혹되지 말고 인문계의 평균적인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3주 전 어느 일간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SKY) 인문사회 계열 졸업생의 취업률은 45.4%로 나타났다. SKY가 이럴 정도니 다른 대학들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나온 씁쓸한 신조어가 “인문계 90%가 논다”는 ‘인구론’이다. 이것이 인문학 전공자의 평균적 모습이다.
두 달 전 서울의 어느 명문대는 비인기 인문계 학과의 통폐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학제 개편은 곧 해당 학과 교수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개편이 유야무야되면 교수의 기득권이야 지켜지겠지만 학생은 ‘인구론’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대학의 인문학 위기와는 달리 지난 몇 년간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그 이유는 인문학이 ‘사치재(luxuries)’이기 때문이다. 사치재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수요가 급증하는 재화를 일컫는 경제학 용어다. 어느 개인의 평생 소득의 변화를 보면 중장년 무렵에 최고조에 달하는데 그때 인문학 수요가 급증한다.
인문학이 사치재란 걸 받아들이면 학제 개편의 방향은 명확해진다. 먼저, 인문계 정원을 필요 최소한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 그 대신 이공계 학생을 포함한 전교생의 인문학 교양 교육을 강화하라. 그래서 학생들이 중장년층이 됐을 때 인문학을 다시 찾도록 만들어라. 그리고 현재 중장년층의 인문학 수요에 부응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라.
인문학 힐링 전도사들 역시 ‘인구론’에 일조한다. 작가인 남정욱 숭실대 교수는 ‘차라리 죽지 그래’라는 저서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나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그런 전도사라고 주장한다. “일하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이라는 등 인문학을 빙자한 반(反)자본주의 논리로 청춘을 오도(誤導)하는 강 박사가 정작 자신은 일의 노예가 돼 자본주의적 돈벌이에 몰두한다고 남 교수는 개탄한다.
남 교수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생처럼 선택받은 소수가 아닌 대다수 청춘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 교수가 설파하는 ‘인문학적 방황’을 믿고 따르다간 낭패 보기 십상인 게 ‘인구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틀 뒤면 입학식과 함께 신학기가 시작된다. 인문학 전도사에게 속아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인문학을 선택해 열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초래할 결과가 어떨지는 미리 헤아려라. 그래야 ‘용잡이 학원’이나 ‘인구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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