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5일 남겨뒀다. 임기 1460일 중 1455일이 지났다. 18대 국회 말이다. 다들 “역대 최악(最惡)의 국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온당치 못한 평가다.
이번 국회에 들어서서야 의원 개개인에 대한 ‘다면 평가’가 가능해졌다. 의정활동을 재규정한 의원들의 상상력 덕분이다. 특히 지덕체(智德體) 중 체력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 그간 미지의 영역이었다. 왕성한 활동에선 행동 규칙까지 추출해 낼 수 있었으니, 제1조는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가 상대한다’는 거였다. 강기정·김성회 의원의 맞대결이 눈길을 끌었는데 의원들끼리도 주먹으로 치면 피가 난다는 엄연성과 같은 주먹질인데도 상해의 수준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동시에 보여줬다. 여성도 격투기에 능할 수 있다는 것과 50~60대 여성들이 40대 안팎의 여성들을 압도한 데서 드러나듯 근력은 나이를 초월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
행동 규칙 제2조는 ‘상대 안 가린다’였다. 과거엔 의원은 의원을, 보좌진은 보좌진을 상대했다. 이번 국회는 탈권위를 몸소 실천했다. 보좌진으로부터 얻어맞은 차명진·서갑원 의원이 그 예다. 강기정 의원은 분풀이 삼아 국회 경위를 향해 주먹을 날려 언론인들에게 폭력성의 근원을 탐구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제3조는 ‘손에 잡히는 건 다 쓴다’였다. 분명 도구의 진화가 이뤄졌다. 의사봉·명패 수준에서 해머·소화기·전기톱은 물론 최루탄까지 사용했다. 재료만 있었으면 화염병 제조도 가능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제4조와 5조는 ‘하다 보면 는다’와 ‘낯 두꺼워진다’였다. 특히 야당의 경우 노숙(露宿) 능력이 크게 배가됐는데 임기 막판엔 10일 정도는 눈 질끈 감고 할 정도가 됐다. 의원들 상당수가 본회의장에서 “우리가 개냐, 개처럼 끌어내게”를 외치며 끌려나가곤 했으나 그런 변신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괘념치 않았다.
의정활동의 확장은 부수적 성과도 거뒀으니 말 그대로 국회 본관의 보안시스템 개선이다. 이전까지 창문도 문도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였다. 첨단 과학의 세례 끝에야 문은 문, 창문은 창문이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의원들이 그렇다고 전통적인 역할을 게을리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80여 일 지각 개원했지만 양으로 만회했다. 1만4761건의 안건을 다뤘다. 역대 최다다. 17대 국회보다 6300여 건 늘었다. 4·11 총선 이후에도 폐기될 게 뻔한 법안을 제출한 의원이 있을 정도다. 물량주의가 트렌드임을 보여준 거다. 와인 값이 싸진 건 18대 국회 덕이란 칭송이 자자한 터에 몸싸움방지법안과 112위치추적법안까지 처리하지 않았던가. 내실도 있었던 거다. 6488건을 폐기한다고 타박할 일이 아니다.
18대 국회는 예산 심의에도 남다른 심혈을 기울였다. 예산회계법이 마련된 1961년 이후 12월 31일 밤 11시27분까지 예산을 들여다본 국회는 18대뿐이다. 그간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2004년의 ‘심사숙고’를 한 시간여 차로 제쳤다. 해를 넘길지 모른다는 ‘초읽기’의 압박감을 이겨낸 결과다. 덕분에 12월 2일까지 처리해야 한다는 헌법 무시 기록도 이어갈 수 있었다. 9년 연속이다.
의원만 주목받은 게 아니다. 국회의장도 마찬가지다. 박희태 의장은 국회의장이 없어도 국회는 잘 굴러간다는, 누구나 아나 누구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못했던 걸 실천으로 드러냈다.
이런 활약상이 국제적 성가(聲價)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미국의 한 외교 전문지는 우리 국회를 ‘세계 리더’로 꼽았다. 역대 챔피언으로 불리던 대만을 제친 건 물론이다.
18대 국회는 미래 대비 능력도 있었으니 19대 의원 300명 중 115명이 18대 출신이다. 일부 낙오했다고 하나 ‘센 사람’으로 업그레이드됐다는 게 중평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한 정당은 당내 행사를 통해 화끈하게 몸풀기부터 하는 중이다.
뭐니뭐니 해도 18대 국회의 탁월한 점은 남루함을 감수한 자세다. 앞으로 국회는 웬만큼만 해도 18대 국회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 거다. 18대 국회의 겸양지덕에 탄복할 따름이다.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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