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두 번 가봤다. 한반도 남쪽의 바다 도시 여수를 처음 가본 건 2008년 7월이다.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획특집 취재를 위해서였다. 1948년 8월 15일을 전후한 건국기의 주요 사건을 10회 연재하는 기획이었는데 ‘여순사건’을 빼고 건국을 말할 순 없었다. 48년 10월 19일 당시 여수에 주둔하던 14연대 소속 좌파 성향 군인들의 무장봉기로 시작된 ‘여수·순천 10·19사건’을 줄여서 여순사건이라 한다.
여수를 두 번째로 간 건 5월 12일 개막한 ‘2012 여수 세계박람회(엑스포)’ 취재를 위해서였다. 여수는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차례의 여수 방문 성격이 묘하게 대비되는 느낌을 받는다. 첫 번째가 국가를 부정하는 모습에 관한 것이라면, 두 번째는 국가의 파워를 과시하는 모습에 대한 것이다. 여수 엑스포는 올해 진행되는 최대의 국제적 행사로 꼽힌다.
여수 하면 머릿속에 여순사건부터 떠올리는 이들이 아마 적지 않을 텐데 여수 엑스포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여순사건은 태어난 지 두 달밖에 안 된 신생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사건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채 일주일 만에 진압되었지만 그 여파는 어느 사건 못지않게 컸다. 좌파의 폭력에 우파의 보복이 이어지는 피의 악순환은 이념을 둘러싼 갈등의 최종 국면이 어떤 모습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비극 중의 비극이었다. 대한민국의 정당성에 도전했지만 그 결과는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안보를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두 달 후인 48년 12월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고 이후 반공은 선택이 아닌 국민의 필수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여수는 지금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여순사건으로 잿더미로 변했다가 60여 년 만에 엑스포의 도시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보다 더 극적인 요소가 있을까. 엑스포 평가는 대개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이벤트 측면과 정책적 측면이다. 이벤트 측면은 얼마나 흥행에 성공했나를 평가한다. 정책적 측면은 박람회장의 사후 활용과 지역 발전, 지역 이미지 제고 등이 평가요소다.
막 시작한 여수 엑스포의 성공을 기원하며 하나의 제안을 드리고 싶은데, 여순사건의 기억을 엑스포가 적극 끌어안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역사적 기억이 비극에서 엑스포 축제로 전환되는 현장에 참여하는 이가 는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일 것이다. 여수 엑스포가 국민적 축제의 이벤트장으로 승화된다면 이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줄 평가요소는 없을 것 같다. 엑스포가 끝난 후 박람회장 활용에도 이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동 로터리 광장이나 여수중앙초등학교 등 여순사건 현장을 4년 전 답사할 때 가슴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취재에 응했던 여수 시민의 친절과 따뜻함을 잊을 수 없다. 여순사건 대신 여수 엑스포의 기억이 우리 국민 사이에 널리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기 위해선 여수 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적 동참의식이 필요한 때인 듯하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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