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지 대기업' '외국 대사관'… 문득 명함 위로 겹쳐진 것은 '엄친아' 키워낸 과잉 母性
부모 지위 상징하는 허례 말고 신랑 신부가 진짜 주인공으로 새 인생 다짐하는 예식 됐으면
요즘은 결혼 시즌이 따로 없다지만 그래도 이곳저곳에서 날아드는 청첩장이 5월을 실감케 한다. 우편함에 쌓인 우편물을 챙기다 낯선 이름이 적힌 청첩장을 무심코 열어보니 신랑 신부의 명함이 동봉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신랑 신부의 얼굴도 모른 채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는 하객(賀客)을 위한 혼주(婚主)들의 배려(?)일 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명함 주인공들의 면면을 보니, 신랑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고, 신부는 외국 대사관에 근무하는 재원(才媛)이었다. '이 정도 되니 신랑 신부의 명함을 동봉한 것일 게야.' 애써 마음을 달래 보았지만, '불편한 진실'을 대하듯 왠지 마음이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오래전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국제결혼을 한 선배 이야기가 생각난다. 상대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한국의 유명 교회에서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통역을 진행하며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이 끝난 후 신랑 왈(曰), 자신이 이제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결혼식장을 가득 메운 모습을 보곤 매우 의아했고 당혹스러웠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장면이 외국인의 눈에는 참으로 낯설게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우리 결혼의례의 실질적 주인공이 신랑 신부가 아니라 그들의 부모라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란 신랑 신부의 만남보다는 신랑 신부를 둘러싼 양 가족 간 결합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는 것을 그 누가 부인하랴. 더욱이 상류층 및 중상류층으로 갈수록 공고한 혼맥(婚脈)을 통해 계층 및 지위 재생산이 이루어지면서, 가족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경제적 자원이 축적되며 사회자본 또한 확대된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결혼식장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화환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징하고, 축의금 봉투를 내미는 하객들의 행렬은 부모의 네트워킹 파워를 입증한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전통이야 나무랄 데 없는 미덕이지만 경조사비로 대변되는 품위유지비가 가계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사실과 은퇴한 이들에겐 가장 부담스러운 지출항목으로 부상했다는 소식은 우울하기만 하다. 청첩장에 동봉된 두 장의 명함을 보며 마음이 못내 불편했던 것은 그 명함 위로 '엄친아'(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엄마 친구 아들 및 딸)를 키워낸 '과잉 모성(母性)'의 의기양양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요, 더불어 우리 결혼의례에 담긴 허식과 허세가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인 듯하다.
인류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결혼의례의 화려함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사이엔 반비례 관계가 있다. 결혼의례가 호사스러울수록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열악하다는 것이다. 그 실례로는 일주일 이상이나 결혼예식을 거행하는 아랍권이나 인도의 사례가 지목되고 있다. 반면 유럽에서는 '시민결혼(civil marriage)'이라 하여 결혼 당사자가 증인을 앞세워 공공기관에 신고하는 것으로 결혼이 성립된다. 굳이 화려한 결혼예식을 고집하지 않는 유럽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게 나타나고 있음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에 비춰보면 우리도 주위에서 결혼예식이 화려해질수록 행여 여성의 지위가 겉보기와는 달리 실질적으론 은밀히 낮아지고 있는 건 아닌가 기우가 고개를 들기도 한다.
바라건대 신랑 신부가 결혼식의 진짜 주인공이 되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결혼의례가 서서히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부모의 사회적 위세를 과시하기보다는 결혼 당사자들의 진솔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결혼식장에 가고 싶다.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을 패키지로 구입하는 '스드메'로 대변되는 철저히 상품화된 몰개성적인 결혼식 대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주인공들의 다짐과 약속이 담긴 그런 신선한 결혼식을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전설이 된 제자의 결혼식이 생각난다. 개량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머리에 화관(花冠)을 쓴 제자는 동네 청소년회관을 빌려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제자의 친정 부모님은 딸과 사위를 위해 '내게 당신은 첫눈 같은 이'란 시를 낭송해주었고, 신랑 신부는 하객들을 위해 '삼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며 수줍게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엔 필수였던 비디오 촬영조차 생략된 그들만의 결혼식은 현장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으로 남았음은 물론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21/20120521015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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