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호만 고집하는 건 구식… 인류위기의 해답은 해양에 있어”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회의(UNCED) 취재는 기자로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리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인이 여행을 마음먹기엔 너무나 먼 대척점이었다.
거기서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가 열렸다. 180여 개국의 대통령, 총리, 정부 대표들을 위한 리셉션이 열리던 저녁, 어쩌다 보니 리셉션홀 안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고개를 돌리니 바로 옆에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서 있었다. 9·11테러 이후였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리셉션홀을 가득 메운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각국의 그런 열정들이 지구를 대하는 인류의 헌법적 행동규범, 바로 ‘리우선언’을 만들어냈다. 리우 회의에서 만든 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보존협약은 물론이고 ‘지속가능개발’의 이념은 이후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로 이어지면서 지구촌의 대원칙이 됐다. 하지만 20년이 흐르는 동안 처음의 동력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리우선언 20년을 맞아 다음 달 13일부터 183개국이 참석하는 ‘리우+20’ 정상회의가 열리지만 각국의 의지는 그때 같지 않다.
“브라질의 ‘리우+20’ 정상회의에서는 아무런 선언문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8월 12일 여수엑스포 폐막과 함께 발표되는 ‘여수선언(Yeosu Declaration)’이 리우선언의 정신을 잇게 될 것입니다.”
장도수 여수선언문 작성 기초위원장은 “여수엑스포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여수선언을 해양판 리우선언으로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인 해양정책학 박사 1호’인 그는 현재 한국해양연구원(KORDI) 해양과학국제협력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는 미국 마이애미대와 델라웨어대에서 학위를 마친 뒤 미국해양대기청(NOAA)에서 8년간 근무하다 3년 전 해양연구원에 영입됐다. 24일 경기 안산시에 있는 해양연구원을 찾았다. 그는 마침 여수엑스포 현장에서 올라와 있었다.
―여수선언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여수엑스포의 주제는 아시다시피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The living ocean and coast)’입니다. 여수엑스포를 이벤트성 행사로 끝내지 않고 세계인의 유산으로 만들어나가려면 그 주제를 리우선언의 연장선상에서 국제적 약속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는 10년마다 중요한 ‘지구선언문’을 만들어 왔습니다. 1972년 스톡홀름 인간과 환경 선언, 1982년 나이로비 환경보호 선언, 1992년 리우 환경과 개발 선언, 그리고 2002년 요하네스버그 지속가능개발 선언이 공교롭게도 10년 간격으로 이어져왔습니다. 여수선언은 그런 선언들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4년 전 상하이엑스포에서 ‘도시 선언’이 채택됐지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여수선언은 다릅니다.”
―1998년 포르투갈 리스본 박람회도 주제가 ‘바다-미래를 위한 유산’이었습니다. 여수엑스포의 주제는 리스본과 어떻게 다른 겁니까.
“리스본은 해양환경보호가 주제였습니다. 1980, 90년대는 세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환경문제가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수는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라고 표현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新)성장동력으로서의 해양이 주제입니다. 리우+20 정상회의도 그린 이코노미(Green Economy·녹색성장)이고요. 여수엑스포의 모든 전시물은 단지 ‘바다가 아름답다’는 게 아니라 혁신적인 해양기술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이 세계 1위이지만 선박도 이젠 친환경 선박의 미래를 보여주려 합니다. 해양의 거대한 에너지 자원 이용 방안도 보여주고요. 그런 게 요원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원자력발전이나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환경보호만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구식입니다. 바이오테크놀로지, 신해양에너지, 기후변화 극복 방안은 모두 해양에 그 답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여수엑스포, 여수선언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여수선언이 말 그대로 ‘해양판 리우선언’이 되려면 국제사회의 지지와 행동프로그램이 뒷받침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속된 말로 하면 세계 해양과학계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이 모두 여수선언 검토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세계박람회기구(BIE)도 처음엔 ‘박람회에서 웬 해양선언이냐’는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적극적인 지지로 돌아섰습니다. 또 8월 12일 여수선언 포럼 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유네스코 사무총장, 유엔환경프로그램(UNEP) 사무총장 등 유엔의 해양 관련 기구 책임자들이 모두 참여하는데 이런 사례는 드뭅니다. 무엇보다 여수프로젝트라는 액션 프로그램을 통해 여수엑스포의 유산을 이어나갈 겁니다. 엑스포 역사상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한 국제협력프로그램을 마련한 건 여수엑스포가 처음입니다. 지난 3년간은 파일럿(시험) 프로그램이었지만, 엑스포가 끝나면 재단이 출범해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시작할 겁니다. 펀드 구상도 돼 있습니다. 여수프로젝트는 여수선언의 배터리가 될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해양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이해는 좀 낮은 수준 아닌가요? 여수선언 본문 제9항에도 ‘해양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와 시민사회의 인식 및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해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떨어지죠. 사실 선언문 준비과정에서 가장 고민한 부분이 바로 ‘넌 오션 커뮤니티(non ocean community)’였습니다. 미국은 네이비 리그라고 해군 팬클럽까지 있습니다. 물론 해군 가족도 있지만 1달러든, 10달러든, 100달러든 회비를 내면서 해군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시민들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번에 이렇게 큰 규모로 비(非)해양인구에 해양의 중요성을 알릴 기회를 마련했다는 건 엄청나게 중요한 겁니다. 세계의 어느 해양행사도 이렇게 큰 규모로 열리고, 또 언론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임팩트가 대단할 겁니다. 통영에서 온 할머니도 바다는 그냥 시퍼런 물이라고 생각하지 그 밑에서 수백 도의 용암이 끓고 있다는 생각은 못할 겁니다. 또 섭씨 100도로 끓는 물에서는 모든 게 익어버린다고 생각하지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는 효소가 살고 있다는 생각은 못할 겁니다. 그런 할머니들도 주제관의 동영상을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이해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영상이 뇌리에 남을 겁니다. 영상 중에는 우리 전문가들도 보지 못한 희귀한 자료도 있습니다.”
―여수엑스포가 정말 해양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는 말입니까.
“방학이 되면 초중고교생들이 올 겁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집중할 생각입니다. 우리가 준비한 영상이 어떻게 비칠지 모릅니다. 어느 순간, 영상이 남으면 자라나는 세대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영상을 보고 어떤 꿈을 꿀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 해양 전문가도 되겠지만, 정치인이 되면 엑스포에서 받은 영향이 살아날 겁니다.”
대구 경북고를 졸업한 장 위원장은 1978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내륙 도시 출신이 어떻게 해양에 눈을 뜨게 됐습니까.
“처음엔 육군사관학교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원서를 가지고 갔더니 사회 과목을 맡고 있던 담임선생님이 ‘앞으로 20년쯤 후 네가 대령이 될 때면 해군이 클 것이다. 우리 경제도 큰다. 미국을 봐라. 경제가 커지면 해군이 성장한다. 그리고 통일이 되면 우리 해군도 대양해군이 될 것이다’라며 육사보다 해사를 권했습니다.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바로 육사 원서를 찢어버리고 해사에 입학했지만 임관은 못했습니다. 3학년 때 전두환 정권이 시작됐는데 데모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울분을 참지 못하고 성토하다가 그만…. 해사 시절은 재미있었습니다. 운명 같기도 합니다.”
―고교 동문들 사이에서 ‘괴짜’라는 소리를 들었을 법합니다.
“돌연변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이애미대에서 해양정책학을 공부했습니다. 처음엔 해양과학이나 해양생물도 생각했는데 당시 교수님이 ‘이젠 해양법 시대다. 지금까지는 연안으로부터 3해리까지만 전관수역으로 인정해 해양이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앞으로 해양법이 비준되면 200해리가 된다. 해양의 레짐(regime·체제) 자체가 바뀐다’고 말씀하시던 게 기억납니다.”
―델라웨어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게 2000년이라고 들었는데, 한국인 해양정책학 박사 1호가 2000년에야 나왔다는 것은 우리의 해양인식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 같습니다.
“미국은 1972년도에 학위를 만들었으니까 우리가 한 30년 가까이 늦은 셈입니다. 하지만 7월이면 한국해양연구원이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으로 거듭납니다. 한국이 여수엑스포를 계기로 해양리더십을 가지려면 역시 해양과학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적절한 시기에 해양과학기술원이 탄생하는 겁니다. 해양의 KAIST를 만드는 건 우리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거기에 2016년경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해양클러스터의 중심이 되면 차세대 인력 양성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20∼30년 내에는 확고한 해양리더십을 갖추게 될 겁니다.”
―노무현 정부는 세계 5대 해양강국 진입을 공약하기도 했지만, 현재 우리의 해양연구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얼마 전 세계 해양 관련 연구기관장 80명이 모였을 때 한국해양연구원의 규모를 보고 ‘톱 10’ 수준이라고 평가했지만 우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자기공명영상(MRI) 자료가 없으면 의료 분야의 논문을 쓰지 못합니다. 슈퍼컴퓨터가 없으면 기상청의 예보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해양 연구에도 그런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물론 지금도 우리의 천리안 위성은 24시간 정지궤도에 떠있으면서 관측 자료를 보내는 세계에서 유일한 위성입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나 미 해양청(NOAA)에서 자료협조 요청이 올 정도입니다. 또 우리가 아라온호(쇄빙선)를 갖게 되자 각국에서 협력 요청이 오고 있습니다. 해양조사선 온누리호는 1400t급이지만 2014년에는 5000t급이 출범해 전 세계를 돌게 됩니다. 저는 우리의 해양과학기술 발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봅니다. 여수엑스포도 관람객 수로만 따질 일이 아닙니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죠. 왜 해양입니까? 왜 21세기를 해양의 시대라고 하고, 해양이 인류의 미래라고 합니까.
“간단합니다. 지구는 이미 인구 과잉입니다. 지구, 아니 육지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었습니다. 자연, 숲, 자원, 산소…모든 게 지속가능 단계를 넘었습니다. 과잉인구가 육지의 모든 가용자원을 빨아 당겼습니다. 30∼50년만 있으면 재활용이 아닌 한 모두 고갈될 겁니다. 다른 자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바로 해양입니다. 에너지, 기후, 질병 등 인류가 당면할 위기의 해답은 모두 해양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수엑스포와 여수선언을 계기로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해양정신’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반도(半島)국가란 대륙의 끝이자, 해양의 시작점인데 우리는 조선의 오랜 해금(海禁)정책과 식민지, 분단을 거치면서 반도국가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해양정신은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려는 도전정신이고 개척정신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해양을 연구하는 사람의 90%가 백인(白人)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진취성은 대단합니다. 당장 외국 기자들도 반신반의하던 여수엑스포 준비를 저렇게 훌륭하게 마친 걸 보십시오. 저도 놀랐습니다. 여수엑스포는 한국 해양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도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르네상스…. 한국해양연구원 강정극 원장은 평소 “우리가 해양에 대해 아는 것은 달에 대해 아는 것보다 적다”고 말한다. 근대의 시작을 알린 르네상스도 중세의 무지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출발했다.
김창혁 전문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20528/465616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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