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봄, 싱가포르 총리를 지낸 리콴유는 <포린 어페어스>와 인터뷰를 한다. ‘문화는 운명이다’라는 제목의 인터뷰 내내 그는 아시아의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서구적 의미의 민주주의 개념은 동아시아에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까지 인용하면서 가부장적 가치를 역설하던 리콴유는 심지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1인1표제’에 대해서도 “이성적으로는 확신을 못 하겠다”고 한다. 가족을 가진 40살 이상의 남성에게 2표를 행사할 권리를 준다면 좀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해 가을,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김대중은 같은 잡지에 ‘문화는 운명인가?’라는 글을 기고해서 리콴유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맹자의 왕도정치와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예로 들면서 아시아의 문화가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뿌리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리콴유가 정치적 반대자를 용납하지 않아온 점을 상기시키고 싱가포르에서 민주주의가 기회를 가져본 일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글은 “문화는 우리의 운명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우리의 운명이다”라고 끝을 맺는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한 것이다.
리콴유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는 31년간 총리로 재직하면서 자원도 없는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이해는 비판받을 점이 한둘이 아니다. 싱가포르에서 옥외집회를 하려면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소송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아직도 곤장이 존재하고, 개인의 사생활 하나하나가 형벌로 규제된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변기의 물을 내리지 않거나 길에 휴지를 버리거나 무단횡단을 하면 처벌받는다. 껌을 파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동성애는 말할 것도 없다.
외신기자로부터 껌 씹는 행동마저 규제하는 것은 국민의 창조성을 질식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리콴유는 “뭘 씹지 못해서 생각을 못 하겠다면 차라리 바나나를 씹어라”라고 대답을 해서 쓴웃음을 짓게 했다. <1984년>을 연상하게 하는 이런 식의 극단적 전체주의는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김대중의 반론이 타당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일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북한에 대한 발언이 비판을 받고 있다. 그들은 3대 세습, 인권, 그리고 북핵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질문에 ‘양심의 자유’를 들이대면서 회피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선출된 정치인에게 핵에 대한 대책을 묻는 것이 어떻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있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쿠데타 직후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희한한 개념을 들고나왔다. 국민의 수준이 낮아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는 것은 이르니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변종 민주주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다. 김지하가 쓴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조사’는 지금까지도 명문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세상에 ‘특수성’을 이유로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 정당화된 일은 없다. 북한의 상황을 고려해서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면, 박정희의 민족적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도 하지 말았어야 하느냐고 묻고 싶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우리의 운명이다. 그리고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북한에 대한 비판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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