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입고서 회사엘 가”고, “여름 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할 거라고 노래한 가수들이 있었다. 그 노래가 나온 지 꼭 15년 만에 반바지에 샌들 차림의 공무원을 볼 수 있게 됐다. 최근 서울시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공무원 복장 지침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에너지 절약이 우선이냐, 업무 몰입도와 근무 태도가 우선이냐. 양쪽의 의견을 들어봤다.
이유진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 |
에너지 절약 위해 더 확대해야
이상고온 탓 전력수급 비상인데
찜통더위에 정장 고집 이유없어
공무원 품위와 옷 연결은 무리
이번 여름 서울시 공무원들의 옷차림이 기대된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 넥타이와 재킷을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일하는 쿨비즈(Coolbiz) 운동을 펼치면서 반바지와 샌들도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슈퍼쿨비즈 운동’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6~8월 실시되고, 시민을 대하는 민원부서는 예외라고 한다.
쿨비즈 운동은 2004년 일본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 후 전력난이 심해지면서 환경성이 주도해 티셔츠와 샌들을 허용하는 ‘슈퍼쿨비즈’ 운동으로 진화했다. 일본은 현재 54기의 원전이 모두 멈춰 이번 여름에도 초절전 모드에 들어갔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이상고온 현상으로 초여름날씨가 계속되면서 전력수급은 벌써 비상체제로 들어섰다. 총리가 나서서 공공기관 1만9000곳에서 전년 대비 5% 전기 절약을 추진한다고 발표할 정도다.
특히 서울시는 원전 1기 줄이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14년까지 에너지 절약과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통해 ‘영광 5호기’ 발전량만큼을 줄여야 한다. 에너지 위기 때문에 반짝 절약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증가일로에 있는 전력소비를 줄여 지역에 지우는 전력생산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전력자급률은 2.8%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15일 대규모 정전을 경험하면서 도시 안전망 확보 차원에서라도 에너지 수요관리와 생산이 중요해진 것이다.
서울과 같이 에너지 낭비가 심한 곳에서는 원전 1기 줄이기를 달성하려면 절약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솔선수범 차원에서 냉방온도 28도를 엄격히 지켜야 하는 서울시 공무원들로서는 ‘슈퍼쿨비즈’ 운동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찜통더위에 정장 차림으로 일한다면 괴롭기도 하거니와 업무효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람이 있다면 ‘슈퍼쿨비즈’ 운동이 한발 더 나아갔으면 한다. 지난겨울 지식경제부 직원 게시판에 ‘난방온도 18도 꼭 지켜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에너지 절약 주무부처로 모범을 보이고자 지경부는 18도 기준을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그런데 1980년대 준공된 건물이다 보니 층별 난방이 불가능했다. 난방이 잘되는 4~5층 온도를 18도 이하로 설정하면서 다른 층의 온도는 10도 안팎으로 너무 추웠던 것이다. 냉난방 온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건물단열 성능이 개선되어야 한다. 또 지나치게 냉난방 온도 규제에만 집착할 경우 개별 전열기와 선풍기 이용이 늘어나 에너지를 더 많이 쓰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도 있다. 서울시는 쿨비즈 운동과 동시에 건물 에너지 효율화와 냉난방기기 효율성 제고 정책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반바지 차림이 공무원의 권위와 품위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무원들의 권위는 옷차림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의 혈세를 토목사업에 낭비할 때, 이권을 위한 비리에 연루되었을 때, 탁상행정으로 일관할 때 떨어진다. 서울시가 시민을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신뢰를 쌓으면,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공무원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 환경의 날인 6월5일 열리는 ‘쿨비즈 패션쇼’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모델로 참여한다고 한다. 시장님이 어떤 색깔의 반바지를 입고 나올지 벌써 기대가 된다. 단 샌들에 양말은 신지 마시길.
이유진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
이우창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
옷은 생각·집중력에 큰 영향 끼쳐
운동 차원 일괄적 복장 통일보단
직무 특성 반영한 옷차림 바람직
서울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올 여름철에 ‘쿨비즈’ 복장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쿨비즈는 ‘쿨’(Cool)과 ‘비즈니스’(Business)의 합성어로 여름철에는 간편하고 시원한 복장을 입어 사무실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운동이다. 민원부서 외에는 반바지와 샌들도 허용하기로 했고, 향후에는 25개 자치구를 포함해 시 산하기관, 학교 및 기업 등으로 확산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는 기름값을 생각하면 에너지 절약에 대한 서울시의 고민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복장 규정을 만들면서 서울시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그건 바로, 입고 있는 옷이 스스로의 능력과 행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최근 발표된 논문엔 이를 증명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의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미국 심리학 관련 학회지(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에 기고한 논문에서 복장이 어떻게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재미있는 실험을 통해 보여줬다.
그는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피실험자들을 무작위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의사 가운을 걸쳐주고, 다른 한 그룹에는 평범한 일상복을 입게 했다. 그리고 초록색과 붉은색을 화면에 번갈아 보여주면서 화면 아래쪽에는 ‘녹색’이나 ‘빨간색’이라는 글자가 뜨도록 했다. 화면의 색깔과 글자의 의미가 어긋났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잘 알아채고 골라내는지 측정한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의사 가운을 입은 피실험자들이 화면의 색과 글자가 일치하지 않을 때 모르고 지나치는 비율이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피실험자들을 바꿔가면서 비슷한 종류의 실험을 계속해보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피실험자들은 단지 의사들이 입는 가운을 걸쳤다는 이유만으로 훨씬 더 높은 집중력을 보여줬다는 뜻이다. 옷이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두뇌 활동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 실험의 의미는 사람은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 특성에 맞는 복장을 하고 있을 때 가장 높은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무 복장을 결정할 때 ‘냉방 비용’ 못지않게 중요하게 고려할 것은 업무별로 요구되는 직무 특성이다.
창의성이 요구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에게 넥타이와 정장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사고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런 직무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굳이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편한 복장으로 근무하게 하는 것이 창조적인 생각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꼼꼼하고 세심한 업무를 수행하는 관리자들은 반바지와 샌들보다는 오히려 격식에 맞는 정장을 입고 있을 때 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일할 때 입는 근무복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다. 입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집중력까지 변화시키는 중요한 업무 도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장 규정을 바꾸는 경우에는 에너지 절감 이상의 것을 고민해야 한다. 직원들의 업무 몰입을 높여주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직무의 본질을 반영하는 복장을 입혀주어야 한다. 쿨비즈 운동과 같은 일괄적인 복장 통일보다는, 먼저 직무에 요구되는 본질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복장을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업무 몰입도와 생산성의 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이우창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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