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 속에서 배운다, 생활 속에서 배운다, 주민들 협력해서 스스로 한다. 다른 곳에서 배우러 오면 제2의 풀무학교 제2의 홍동이 되지 말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라고 해요."
오전엔 교양, 오후엔 농사 배워… 20명이 공부… 20,30대 많아… 재능따라 미술·음악 가르치기도
유기농 첫도입 했는데…
도농 농산물 직거래 방식인 '꾸러미 조합'도 홍동서 시작… 年 매출 2배 이상 올라 의욕적
신협·생협 잘되고 있는지…
규모 커지며 아쉬운 점 생겨… 작고 소박해야 진짜 협동조합… 무이자 장기상환 신협 구상중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인구 3,700명의 시골마을이 심상찮다. 면사무소 옆으로 어린이집 도서관 출판사 생협가게 원예조합 비누공장 대안대학 등이 이어져 있다. 토요일이면 무료건강상담을 하는 곳에는 내년에 의료생협이 들어선다. 모두가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마을기업이거나 주민들이 직접 만든 공공시설. 전국 농촌에서 고령화가 걱정인데 저녁 어스름이 지자 젊은 주민들이 하나 둘 자녀를 데리고 이곳으로 모인다. 충남에서 홍성이 귀농인구가 가장 많고 그 중에서도 홍동면이 최고인 것은 바로 교육과 일자리와 문화가 협동조합 아래 어우려져 있기 때문. 홍동면은 한국에서 유기농 농사와 친환경 오리농법 논농사가 시작된 곳이며 최근 새로운 도농 직거래 방식으로 뜨는 '(농산물)꾸러미'도 여기서 시작됐다. 이곳이 이렇게 지역자치의 현장이 되기까지에는 지역에 뿌리내리는 건강한 평민 양성을 목표로 1958년 생겨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학교)가 큰 역할을 했다. 1960년부터 이 학교 교사를 하며 협동조합운동을 개척하고 2001년에는 2년제 대안대학인 풀무학교 전공부를 만든 홍순명(75) 밝맑도서관 이사장을 만났다.
_이곳에는 젊은이도 아이들도 많이 보이네요.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마을도 있으려면 아이가 필요해요. 아이가 있어서 마을이 윤기 나고 활력이 넘치고. 농촌에 정착하겠다며 이곳으로 옮겨오는 이들이 제법 있어요. 풀무학교(고등학교)를 만들 때도 지역에 뿌리 내리는 농민을 키우겠다는 것이었는데 갈수록 고등학교 교육만으로는 전문성을 갖추기가 힘들어졌어요. 대학에 가서 경쟁사회로 흩어지면 배운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고 요즘 대학은 대기업에서 일할 사람을 키워주는 하청공장처럼 됐어요. 그래서 풀무학교 전공부를 만들었어요. 오전에는 교양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농사를 가르쳐요. 고등학교 정도의 학비에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여러 협동조합에서 일을 체험하고 농사도 직접 짓고요. 정원은 두 학년 30명인데 실제로는 20명 정도가 공부해요. 고등학교를 나오고 곧바로 오는 이들도 있지만 20, 30대가 많아요. 시골에는 농부만 필요한 게 아니거든요. 농사는 기본이지만 컴퓨터 전문가는 인터넷 농민장터를 운용할 수도 있고 화가는 그림을 가르칠 수 있어요. 풀무학교를 세우신 밝맑 이찬갑(1904~1974) 선생은 '현실주의자 이상주의자, 시인과 음악가 천문학자 지질학자 철학자를 모두 환영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꼭 맞아요. 이들이 농사도 짓고 재능을 살려서 지역에서 가르치는 교사가 되면 학교에서만 교육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마을이 다 학교가 되는 거에요."
_벌써 12년이 흐른 셈인데 졸업생들은 이곳에 농부로 정착을 하고 있습니까?
"그럼요. 여기는 유기농 가르친다, 지역에 맞는 사람 키운다, 처음부터 알려주고 학생 모집하는데요. 매년 외지에서 10명 정도가 오면 다섯 이상은 이곳에 정착합니다. 여기 밝말도서관 사서도 초등학교 교사하던 부부가 와서 남편은 전공부를 마치고 농부로 농산물 유통에 나서고 부인이 도서관을 지켜요. 이 도서관은 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 아고라토론방도 있고 뿌리독서모임방 영사실도 있어서 주민들의 공부와 소통, 문화가 이뤄지는 중심이에요. 녹색당 충남지부당 결성식도 대전도 홍성읍도 아닌 바로 이 도서관에서 했어요. 서울대 작곡과를 나온 사람이 전공부를 마치고 채담이라는, 홍성유기농의 온실채소를 맡으면서 마을에 뻐꾸기합창단을 만들었어요. 할머니부터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세대까지 20~30명이 매주 연습을 하니까 아주 잘해요.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꽃이에요."
_이곳으로 지역교사로 정착한 분도 많고요?
"풀무학교 이사장이 되신 박완 선생님은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자생물학 권위자입니다. 이 분이 정년을 몇 년 남기고 풀무학교로 오시겠다고 하니까 경북대학교에서 극구 만류를 했어요. 전공부에는 교수 가운데 박사만 다섯 명이 됩니다. 그래도 다 학생들하고 일하고. 풀무학교 체육 선생님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운동회를 만들었어요. 전국에서 가장 먼저 홍동면에서 지역신문이 생겼는데 자리가 잡히니까 '홍성신문'이 되어 읍으로 나갔어요. 전공부 졸업생이 인터넷으로 '마실학교'라는 지역신문을 만들었는데 인터넷 신문은 많이 보지 않잖아요. 그래서 집집마다 돌리는 진짜 마을신문을 만들자고 이 체육선생님이 나서서 주민들을 기자로 교육도 시키고, 드디어 나옵니다. 의정부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분이 전공부 교사로 와서 주민들한테 풀과 꽃 생태그림을 그리는 걸 가르쳐서 전시회도 했어요. 어린이 그림을 그리는 류재수씨도 여기 살아요. 창밖에 별이 보이는 작업실이 소원이었는데 여기 지었어요. 출판사에서 맡은 일만 마치면 동네 어린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하셔요. 홍익대 미대를 나오고 대안학교 교사를 하던 분이 오셔서 동네에 목공소를 만들더니 아이들한테 목공교실을 해요. 이런 거는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고 홍동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있지만 공립학교 선생님들은 몇 년마다 바뀌잖아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면 학급 애들하고만 어울리는데 이렇게 지역 학교에서 배우면 평생 배울 수 있고 다양한 연령층과 어울릴 수 있으니 여러 모로 좋습니다."
_보통 농촌지역은 배타적이어서 외지 사람이 정착하기 어렵다던데요.
"여기서는 온지 2, 3년 된 사람은 이주민이고 5, 6년 된 사람은 원주민이고 저처럼 60년부터 온 사람은 원시인이라는 말이 있어요.(웃음) 2004년에 조사해보니까 풀무학교 졸업생 가운데 150명 정도가 지역에 남았어요. 처음에는 진학공부를 안 시키고 노작교육이라고 해서 농사일을 시키니까 거부감이 많았지요. (박정희 정권 때나 군사독재정권 때는) 시류와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 걱정하는 부모도 있었고요. 그러나 졸업생이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지역이 좋게 바뀐 걸 주민들이 인정하면서 이질감이 사라졌어요. 특히 유기농업은 1975년 풀무학교에 온 일본인을 통해 저희가 앞장서서 보급했고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벼나 과수 축산물을 관행농보다 나은 가격으로 다 팔아주니까 농민들이 사기가 살아났지요."
_오리농법도 여기서 시작됐지요.
"논에 오리를 넣어주면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도 돼요. 일본 저자의 책을 읽고 창녕에 와서 하는 강의도 들었어요. 오리농법을 시작하고 그 분과 한일농민교류회를 8년째 계속 하고 있어요. 그런데 2008년에 조류독감이 크게 나자 오리가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옮긴다고 확 줄었어요. 조류독감은 항생제 주면서 키우는 공장식 양계장에서만 나타나요.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런 말을 안 해주고 정부는 양계장보다 오리 탓을 돌리는 게 충격이 적어서 그런지 오리농법을 자제하라 그러니까 농민이 자제인지 지시인지 아냐요. 대신 전국에서 우렁이를 쓰는데 이건 일급 해충이에요. 변종이 생기고 일본에 가보니까 우렁이가 벼를 다 먹어버려요. 오리농법을 되살리려면 오리를 소득원이 되게 해야 하는데 그동안 쓰던 청둥오리는 2,500원에 사넣고도 2,000원을 못 받아요. 몸집이 큰 흰오리로 품종을 바꾸고 5,000원만 받으면 농가수익이 되거든요. 오리가 논에서 먹고 크니까 사료수입 대체효과가 커요. 문제는 가공과 유통이라는 걸 홍성신문에 썼더니 농민들한테는 신품종 오리를 그냥 분양해주고 이익은 주민들과 나누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논의중이에요. 외국에서는 오리털이불이나 점퍼에 넣는 것도 다 가내수공업으로 해요."
_지역활동에 어려움은 없습니까?
"전에는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해도 규제가 심해서 엄두를 못 냈어요. 햄과 소시지를 만들려고 외국에서 배우고 왔는데 100평짜리 시설을 반드시 갖추라고 해서 끝내 포기했어요. 그런데 금년에 협동조합법 시행령이 통과되어서 다섯 사람이면 협동조합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걸 도와주는 인큐베이팅 조직인 '마을활력소'도 생겼어요. 먼저 10월에 할머니장터가 문을 열어요. 농촌이 고령화됐다고 문제를 삼는데 경험과 지혜가 있는 노인에게 일자리를 못 찾아주는 게 문제지 고령화 자체가 걱정은 아니에요. 농촌이라는 게 다 도시에서 20분 거리에 있어요. 그런데 홍동에서 만든 농산물이 생협 농협을 타고 다 서울로 갔다가 다시 재분배가 되어서 소비가 돼요. 홍동에서도 홍동에서 만든 걸 못 사요. 식품이 오락가락하면 온난화의 주범이잖아요. 지역농산물은 지역에서 팔자, 도시에 갔다 온 걸 사지 말고 20분 거리 지역 걸 사자. 할머니들이 텃밭에서 키운 걸 팔면 고스란히 할머니들 수익이 되고 된장 김치 한과도 팔 수 있어요. 내년에 가까이 내포신도시가 생기고 도청도 홍성으로 옮겨오니까 기대가 커요. 전공부 졸업생이 한의대를 졸업해서 유기농으로 한약재를 재배하는 조합을 만든다, 블루베리를 14집이 해서 전국 1등인데 이것도 집집이 생울타리를 해서 잼도 만들고 즐겁게 하자, 주민들끼리 의욕이 대단해요. 홍동에 귀농한 부부가 1년내 유기농 농사 지어봤자 수입이 500만원이더래요. 저축을 못하니까 아플까 걱정도 되어서 한달에 얼마씩 도시 사람들에게 받고 온갖 유기농채소 꾸러미를 정기적으로 보내주니까 연수입이 1,400만원으로 늘었어요. 제값을 받으니까요. 그래서 다섯집씩 모아서 이런 꾸러미 조합을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_풀무학교에서 선생님이 시작해서 지역으로 확산시킨 신협과 생협은 여전히 잘되고 있지요?
"신협은 2,500명이 넘게 참여해서 출자금도 200억이 넘어요. 생협은 풀무학교에서 60년에 시작해서 79년에 동네에 넘겨줬거든요. 홍동면의 모든 농산물을 취급하니까 경리체계가 복잡해서 아이쿱에 위탁하게 됐어요. 둘다 커지고 전국조직에 들어가니까 아쉬운 점이 있어요. 수익을 지역에 환원해라 그래도 들어주기 어렵고. 학교만의 생협을 작게 만들었어요. 새로 생긴 생협이 10%를 지역에 내놓으면 원래 생협도 5%는 내놓지 않겠나.(웃음) 신협은 대출이자가 6.5%인데 고리채는 없앴지만 준은행 기능밖에 못해요. 이자 낮추라 그런다고 여기만 들어줄 수도 없고. 커지면 언제나 문제에요. 그래서 여기도 좋은 걸 또 하나 만들자. 전공부 졸업생이 농촌에 들어가려고 해도 땅값이 너무 올라서 먹지 않고 15년을 모아야 땅 1,000평을 살 수 있어요. 남의 땅을 붙여서 유기농으로 살려놓으면 주인이 내놓으라고 해서 비싸게 팔아요. 농노가 따로 없어요. 그래서 귀농할 사람이 땅 사는 걸 보태주고 이자 없이 장기상환 하는 신협을 구상하고 있어요. 신협도 생협도 더 주민중심으로 더 작게 하자."
_뭐든 작게 하는 것이 중요한 건가요?
"그렇죠. 작고 소박하게 지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따라서. 그래야 진짜 협동조합이에요."
_그런데도 홍동면의 인구 자체는 점점 줄고 있어요.
"농촌의 기본적인 구조를 몇 사람이 바꿀 수는 없어요. 제가 그래요. 시골에서 50년을 있어보니까 악랄한 정권도 있고 학교를 핍박하는 때도 있고 농민이 떠나가는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썰물이 나가고 밀물이 오는 때가 되었다. 시골에 인구가 많은 게 아니라 질적으로 얼마나 생각하는 농민이 있느냐가 중요하고 도시사람들이 텃밭에 관심 가지면서 농촌적인 사고를 갖게 된 것이 중요해요. 이제 농촌과 도시가 협력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9/h20120923200214123700.htm
'교양있는삶 > 사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평로] 대치동이 저문다는데 (0) | 2012.12.25 |
---|---|
[서소문 포럼] 세계 통화전쟁, 원화가 위험하다 (0) | 2012.12.25 |
[지평선/9월 24일] 포맷전쟁 (0) | 2012.12.25 |
[삶과 문화/9월 27일] 강남스타일의 글로벌 인기비결 (0) | 2012.11.05 |
‘강남 스타일’과 ‘청계천 스타일’ 괴물의 세계 정복? (0) | 2012.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