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2. 19:11

한국인이 부른 우리말 가요가 이렇게 세계인의 관심을 받게 된 일은 유사 이래 처음이다. 두달 만에 1억5000만번의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한 ‘강남스타일’은 대체 무엇 때문에 글로벌 스타일로 진화해가는 것일까?

일단 웃긴다. 그런데 우리만 웃는 게 아니다. 일반적인 가수의 이미지와는 살짝 어긋난 외모의 소유자가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희한한 춤을 추는 것이 노르웨이인들에게도 웃기는가 보다. 또한 요즘 유행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도 웃음 코드만큼이나 만국 공통이다. 게다가 이 매력덩어리를 소비하고 전파하는 사회연결망서비스가 늘 우리 손안에 있으니, 삼박자가 딱 맞은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에는 뭔가가 빠져 있다. 웃기고 흥겹다는 이유로 마우스를 수억번씩이나 누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른 요인이 있어야 한다. 우선, 강남스타일의 특이한 춤동작부터 보자. 사실, 이 춤을 특이하다고는 할 수 없다. 참신하긴 하지만 말을 타고 가는 동작이기에 전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말춤’인 것이다. 이 춤이 아이돌 그룹의 현란하고 세련된 춤과는 달리 너무 쉬워서 문화의 국경을 잘 넘게 된 것이라는 분석도 그래서 많다.

하지만 단지 쉽기 때문일까? 쉬운 것으로 따지자면 ‘막춤’만한 것이 없다. 규칙 없이 그냥 추면 된다. 하지만 규칙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로 막춤은 남들이 따라 하기에 가장 힘든 춤이다. 싸이의 춤이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전파되는 이유는 막춤이어서가 아니다. 누구나 아는 규칙을 가진 말춤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맨 처음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게 한 뒤 그다음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따라 그리게 하는 게임을 해보자. 틀림없이 열번째 정도의 사람은 처음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맨 처음 사람이 별모양 그림으로 시작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중간에 어떤 사람이 조금 다르게 복제를 해 놓아도 다른 참여자들이 그것이 별모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제대로 따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말춤은 별모양 그림이다. 이 춤이 전세계로 빠르게 복제되며 진화하는 이유는 춤의 지침(의미)이 보편적이어서다.

춤동작만도 아니다. 강남 ‘스타일’이라는 제목도 한몫을 했다. 누리집에 올라온 전세계의 패러디에는 한결같이 ‘무슨’ 스타일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그저 뒤에 ‘스타일’만 붙이고 자신의 처지대로 따라 하면 그만이다. ‘나는 가수다’ 열풍에 편승해 ‘나는 무엇이다’라는 변이들이 넘쳐났던 현상과 유사하지만, 강남스타일은 국제적인 변이까지도 만들어내고 있다.

생물의 역사에서도 체절동물의 등장처럼 진화의 분수령에 해당하는 사건들이 있다. 실제로 체절의 수와 특징을 여러 방식으로 조합하는 과정에서 생명체는 엄청나게 다양해질 수 있었다. 다양성의 극치인 곤충의 세계만 생각해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진화학자들은 체절의 등장을 ‘진화 가능성’의 진화라고 말한다. 이와 유사하게 강남스타일은 문화적 변이들을 양산하는, 진화 가능한 기작을 작동시킨다. 싸이가 이 모든 원리를 알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분명한 점은 그의 촉과 감은 정말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정치권의 몸부림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자신이 내건 가치가 국민들 사이에서 빠르게 전파되고 풍성한 변이를 만들어내길 갈망할 것이다. 이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싸이에게서 배워야 할 때다. 말춤은 막춤이 아니며, 강남스타일은 강남스타일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1361.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