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이슈에서 별로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여야가 역사인식에서 전선(戰線)을 만들었다는 느낌까지 든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5·16에 대해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가 “역사적 평가에 맡기겠다”고 물러섰지만 인혁당 발언으로 다시 논란을 빚었다. 경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홍사덕 전 의원은 지난달 29일 “유신은 박 전 대통령이 권력 유지가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김병호 캠프 공보단장은 이달 16일 인혁당 사태와 관련해 “피해 당사자가 아닌 가족 후손까지 (사과 대상을) 확대하면 사과 안 받을 국민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민주당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우리 경제를 “개발독재와 정경유착으로 파행적인 압축성장을 이뤘다”고 단정한 문재인 후보는 경선 다음 날 현충원을 방문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찾고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찾지 않았다. 논란이 일자 “가해자 측의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통합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언제든 묘역을 찾겠다”고 했다. 문 후보는 대학시절 유신반대 시위를 하다 제적당했다. 그의 측근인 김경수 전 노무현재단 사무국장은 “역사의 화해란 가해자가 반성과 함께 피해자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간의 이런 인식차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로 갈린 우리 안의 분열을 보여준다.
우선 민주화 세대는 산업화 세대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희생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면서 지금 우리가 넘치도록 향유하는 민주주의가 앞선 세대의 배고픔과 절망의 산물이었음을 간과한다. 빈곤 경험이 없는 2030세대는 삶의 질은 고사하고 생존 자체가 목적이었던 그 시절, 인권 자유 평등 같은 민주적 가치들이 포기되고 유보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로만 받아들인다.
또 연령적으로 50대 이상인 산업화 세대는 최빈국으로부터 탈출해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공을 앞세우며 박정희 시대 때 침해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한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트위터에 박 후보의 역사인식을 문제 삼는 진영을 ‘세작(간첩)’에 비유하는 글을 올려 논란을 빚었다. 진영에 따라 민주주의를 주장하면 종북(從北)이고, 산업화를 주장하면 독재라는 극단적 이분법까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두 진영의 역사인식에서 아쉬운 것은 ‘시간’이라는 요소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민주화가 옳았느냐 산업화가 옳았느냐’ 하는 가치나 개념이 앞선 질문이 아니라 1960년대 70년대 80년대마다 달랐던, 당시 국민들이 최우선적으로 추구했던 과제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이 먼저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간대에서 병행 발전시킨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통합은 두 세대의 화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화 세대는 산업화 세대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민주화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 세대는 민주화 세대의 희생과 고초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대할 필요가 있다.
미래를 논하기에도 부족한데 과거사 논쟁은 퇴행적 주제라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치러야 할 성장통이라는 생각도 든다.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해주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성숙한 역사의식을 보고 싶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034/3/70040100000034/20120920/49537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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