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북한 사람들이 외부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거나 자신들의 사회에 대해 더 정확한 정보를 받는다면 스스로 체제전환을 할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두 나라 정부는 북한에 정보를 송신하는 라디오 방송국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대북 시민단체들은 풍선을 날리거나 직접 국경을 넘어가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북한에 정보를 전파하려 한다.
첫 탈북자들이 북한을 빠져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외부세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기근이 심각했던 1990년대 중반 중국으로 간 북한 사람들은 중국에 첨단 기술과 활기찬 시장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은밀하게 북한 사람들을 교육시키려는 ‘소프트파워’ 전략이 20여년 전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북한 사람들은 더이상 무지의 상태에 있지 않다.
시장의 확산으로 북한 사람들도 이제 디브이디와 엠피3, 유에스비를 갖게 됐다. 남한의 영화와 드라마들도 꽤 인기가 있다. 휴대전화 가입자도 100만명을 넘는다. 이것은 정보가 북한 내에서 더 빠르고 쉽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런 정보유통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큰 정치적 변화를 겪지 않고 있다. ‘소프트파워’ 전략의 주창자들은 단지 시간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정보유통이 점차 북한 사회의 지반을 침식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보의 확대가 반대 의견의 확산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한다. ‘소프트파워’ 전략의 전제는 희망사항에 불과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규모가 아니라 유형이다. 1989년 이전에도 동유럽에서는 서유럽에 대한 많은 정보가 유통됐다. 그러나 1989년이 달랐던 점은 동독인들이 폴란드의 변화 가능성을 알았고, 루마니아인들은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알았으며, 알바니아인들은 부쿠레슈티의 차우셰스쿠 정권의 붕괴를 알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비슷한 정치구조와 문화를 공유하는 나라들에서 정치적으로 갑자기 가능한 것에 대한 정보였다.
‘아랍의 봄’도 마찬가지다. 튀니지·이집트·바레인 사람들은 외부세계나 자신들의 사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지 않았다. 이 나라 국민들을 흥분시킨 것은 아랍에서 갑자기 정치적으로 가능했던 것에 대한 정보였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증가가 아니라 두려움의 감소였다.
북한은 현재 따를 만한 본보기를 갖고 있지 못하다. 남한의 부에 대한 정보는 슬픔, 분개 또는 부러움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운동을 촉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중음악과 드라마, 종교에 관한 정보는 개인을 변모시킬 수 있겠으나, 지도자들에게 저항해 일어나도록 고무할 것 같지는 않다.
북한에는 현 체제에서 득을 보는 정치·경제·사회 부문의 엘리트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다른 나라들에 여행을 다니고, 세계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외국 라디오 방송이나 암시장의 디브이디의 영향으로 인해 충성심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핵심적 이익이 위협받거나, 심각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거나, 또는 더이상 (처벌의) 공포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될 때만 기성 질서와 집단적으로 결별할 것이다.
아는 것은 분명히 힘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은 그 자체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더 폭넓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더 혁명적이라고 가정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정보는 그 자체의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407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