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 12:12

1990년대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가장 기대가 쏠린 분야는 단연 정치였다. 저 먼 그리스 시대 이후로 마침내 직접민주주의 시대의 재래(再來)를 예상하며 다들 지레 흥분했다. 사회적 담론이나 국가정책은 더 이상 소수 엘리트의 자의적 판단이 아닌, 대중의 이성적 합의로 결정될 것이었다. 누구든지 제약 없는 자유로운 참여와 소통이 '집단지성'을 발현케 할 것이라고 굳게들 믿었다. 제아무리 잘났던들 '나' 혼자보다는 '우리'가 훨씬 똑똑한 법이니까.

■기대가 무너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유로운 참여와 소통은 서로 다른 의견들을 모아가는 기능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와 취향이 맞는 동지들을 찾는데 가장 유용한 것이었다. 동지들끼리의 결속감이 커질수록 나와 다른 적들의 정체는 확실해지고 사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집단지성이 아니라, 피아간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집단적 극단화 현상이 심화됐다. 동지를 만나고 적과 싸우는데 시간과 장소의 한계마저 허문 SNS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김광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과거 SNS에 올렸던 글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어떤 너그러운 시선으로 읽어도 지극히 변태적인 성 취향에다, 여자나 밝히는 '있는 집' 자식의 행태가 연상되는 역겨운 내용들이다. 도리어 지탄받아 마땅한 반사회적 인식의 인물을 명색이 공당(公黨)에서 특별히 청년비례대표로 뽑아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주었다. 이런 품성인줄 모르고 그의 앞선 공적 발언들을 진지하게 시비했던 일 자체가 우습고 부끄럽다.

■초기에 공정한 여론형성의 기대감을 듬뿍 받았던 SNS가 이젠 거꾸로 숙의(熟議)민주주의의 적으로 난타당한다. 그래도 역시 SNS의 순기능은 가볍게 볼 게 아니다. 그가 남긴 글들이 없었고, 또 그렇게 쉬 검색할 수 없었다면 그의 실체를 일반이 알아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실 전에도 몇몇 유명 SNS실세들의 트위터 글을 보고 품성에 실망해 생각을 고쳐먹은 적이 여러 번이다. 잘만 활용하면 SNS는 공적 인물들을 걸러내는 유효한 수단이 될 듯도 싶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3021054524440.htm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