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첫 내각 면면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여성과 남성이 동수라는 사실 말고도, 검은 얼굴의 이민자 출신, 황색의 입양아 출신, 옛 식민지 출신 등, 피부색과 출생, 출신에서 찬란한 무지갯빛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돋보인 것은 플뢰르 펠르랭 장관이었다.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그가 한국계(김종숙)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눈길을 사로잡은 건 생후 6개월 만에 양부모에게 맡겨진 입양아 출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자랑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서는 일이었다. 동시에 불운한 운명의 핏덩이를 나라의 지도자 반열에 우뚝 서도록 키운 프랑스 사회가 존경스러운 까닭이었다. 그 힘은 소수자를 배려하고 문화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의 진보적 가치에서 나왔을 것이다.
펠르랭을 바다 건너 프랑스로 떠나보내던 1974년의 한국과 오늘의 한국은 불행하게도 입양의 현실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2010년 미국의 해외 입양아 가운데 36%는 한국 아이들이었다. 압도적 1위였다. 기억할 것은 이들 해외 입양아의 90%가 미혼모의 아이라는 사실이다. 출생이 조금만 달라도 살아남기 힘든 게 한국인 것이다.
최근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교생이 연쇄방화 혐의로 구속된 것은 그 본보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튀기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중학생 때는 열등감에 우울증이 깊어져 자퇴했고, 마음잡고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여전한 따돌림에 3개월 만에 자퇴한 소년이었다. 결국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화염병을 만들어 다니던 학교에 불을 질렀다. 차별이 절망으로, 분노로, 범죄로 이어진 것이다. 프랑스로 입양된 펠르랭은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쳐 장관 자리에 올랐지만, 단지 생김만 조금 다를 뿐인 한국의 혼혈 소년은 범죄자가 된 셈이다.
이런 차별은 다른 소수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의 대통령은 동성 간 결혼도 지지한다고 천명했지만, 한국에선 동성 간 사랑조차 죄악시된다. 데이트를 하던 동성애자가 길거리에서 폭행당하고, 성적 취향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규정 때문에 학생인권조례가 돌을 맞는다. 한국계가 프랑스의 장관이 됐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걸 말릴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하지만 피부색이 다르고 출생이 불운한 한 아이를 잘 길러 장관으로 세운 프랑스 사회의 건강성을 본받는 게 먼저다.
피부색, 성적 취향 등 무언가 조금만 달라도 참지 못하고 따돌리고 폭행하는 우리 자신을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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