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4. 17:18

“1990년대 초 입사할 때만 해도 캐릭터 회사는 인기 없는 직장이었어요. 미대를 졸업한 동기생들은 대부분 월급이 높은 대기업의 사보(社報)나 화보 일러스트레이터 일자리를 구했죠. 하지만 지금 우리 회사 입사 경쟁률은 100 대 1이 넘을 정도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예요.”

동아일보 창간 92주년 연중기획인 ‘일자리가 복지다’의 1부 ‘미래형 직업을 찾아서’ 시리즈 3회에 보도된 일본인 구로다 마사카즈 씨(43)의 말이다. 그가 라이선스 담당자로 일하는 일본의 ‘산엑스’는 뚱한 표정의 곰 캐릭터 리락쿠마 하나로 10년간 2조20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캐릭터 전문기업이다. 구로다 씨 얘기처럼 20년 전 일본에서 캐릭터산업 일자리에 대한 처우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투신한 유능한 인재들 덕분에 일본은 미국과 함께 세계 캐릭터시장을 주도한다. 

선진국에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지만 한국에선 막 싹트기 시작한 직종이 적지 않다. 이런 분야에 대한 국내외 실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본보 취재팀은 ‘멀리 보고, 미리 준비한 자에게 길이 있다’는 평범하지만 귀한 진실을 확인했다. 



한국의 한 날씨전문기업 부장으로 일하는 김종국 씨(40)가 좋은 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기상컨설턴트를 꿈꾸며 취직한 2000년 그는 기상청 날씨정보를 가공해 인터넷사이트에 제공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 김 부장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과, 패션, 유통업체에 컨설팅을 해주는 날씨 전문가가 됐다. 

선진국 미래형 직업의 초기 보상수준이 의외로 낮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싱가포르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노르제나 람리 씨(29·여)는 해외 환자의 진료예약, 입원수속, 의사와의 통역, 퇴원 후 관광일정 등 의료관광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다.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오는 중동의 부호(富豪)까지 상대하는 전문직이지만 입사 1년차 월급은 2500싱가포르달러(약 230만 원)로 한국 중견기업 수준에도 못 미친다. 

스위스의 호텔리어들도 전문학교를 졸업한 첫해 월급이 2000∼2500스위스프랑(약 250만∼312만 원) 정도다. 그러나 이들은 중장기적으로 높은 보상과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경력과 실적을 쌓는 데 주력한다. 입사만 하면 높은 연봉과 안정성이 보장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목을 맨 한국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미래형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는 선진국들은 맞춤형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시스템을 갖췄다. 사내(社內)교육을 통해 매장점원을 매니저, 디자이너로 키워내는 스웨덴의 글로벌 제조·유통 일괄형(SPA) 패션업체 ‘H&M’이나 직업학교와 손잡고 필요한 전문가를 육성하는 독일의 도시광산업체 ‘인터세로’처럼 기업의 교육적 역할도 컸다. 그런 점에서 대학에 의류매장·유통 관련 교육과정을 확대하고, 동대문 등지에서 활동하는 기존 패션업계 종사자들을 재교육해 유통업계에 공급한다는 기획재정부의 ‘한국형 SPA 육성방안’(본보 11일자 B1면 참조)은 방향을 잘 잡은 정책이다.

올해 1000만 명이 넘을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호텔업, 뽀로로 로보카폴리 등 인기 캐릭터를 바탕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캐릭터산업 등 이번 시리즈에서 다룬 8개 직업군에서만 10년 안에 수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형 일자리들은 이미 이렇게 우리 옆에 다가와 있다. 필요한 건 젊은이들의 집념 어린 도전이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20517/46300408/1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