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비디오·멀티·PC방…
카페는 싼값에 거실 빌려주는 곳, 사적 공간 부족해 '방'으로 도피
청소년들, 편의점서 시간 보내고 게임 속 사이버 공간으로 몰려가
부모 감시 벗어날 수 있기 때문
우리나라는 유독 '방' 문화가 발달했다. 노래방, 비디오방, 멀티방, 모텔방, 룸살롱 등 각종 방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도시에 단위 면적당 커피숍이 가장 많은 나라도 우리나라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에 각종 '방'이 많은 이유는 사적인 공간이 부족해서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대학만 가도 부모를 떠나서 산다. 그럴 경우 자기 집에 친구를 불러들이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결혼 전 대부분 부모님과 같이 살고, 국민 60%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부모님과 같이 살아도 2층 주택이라면 층별로 사생활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단층 구조의 아파트에서는 가족끼리 너무 공개되어 있어서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기 어렵다. 독립을 해도 원룸이나 고시원같이 좁은 공간뿐이어서 두 명 이상 함께 앉아 있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만날 때는 카페나 노래방이 필요하고, 연인과 함께 있고 싶을 때는 모텔에 가야 한다. 사적인 공간을 소유할 수 없다 보니 시간당으로 공간을 빌리는 사업이 번창했다.
우리나라에서 카페는 커피를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5000원을 받고 두세 시간 정도 거실을 빌려주는 사업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모텔 대실 문화는 방을 시간당으로 빌려준다. 방 하나를 하루에도 여러 번 돌려쓰는, 시대를 앞선 공유 개념 숙박업이다. 그래서 가격도 저렴하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공간 렌털 사업이 발달해 있다. 공간을 다른 커플들과 나눠 쓰기 싫은 젊은이는 차를 산다. 차는 집보다는 저렴하면서도 완전한 사적 공간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의 선택이다. 더 많은 사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은 자동차 윈도를 어둡게 틴팅(tinting) 한다. 틴팅 필름은 자동차 실내를 좀 더 사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재료다. 뚜벅이가 연애할 때 어려운 것은 이동이 어려워서가 아니고 그들만의 공간이 없어서이다.
사적인 공간의 부족은 청소년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 중1인 필자의 둘째 아들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들어와 엄마에게 꾸중을 듣곤 한다. 중학생들은 왜 편의점을 찾는가? 요즘 학생들은 항시 감시를 받으면서 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선생님과 학부모가 많아야 일 년에 한두 번 만났다. 학교와 가정의 공간이 분리되어서 자녀 세대가 공간적으로 자유와 독립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원에 5분만 늦어도 학부모에게 문자가 도착한다. 학원은 고객인 학부모들과 공조해 전방위로 학생을 감시한다.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아이들은 공간적으로 부모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핵가족 형태도 청소년에게는 불리한 구조다. 대가족 집안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야단치면 조부모가 옆에서 말려주고 견제해주었다. 권력 구도가 견제 가능한 순환형 3권 분립 체제였다. 반면 지금은 부모-자녀 양강 대립구도다. 요즘은 부모 중 한 명이 야단치는데 다른 한 명이 말리면 부부싸움만 난다.
학교, 학원, 집 모두 부모 감시하의 공간이다. 청소년에게는 감시에서 벗어난 사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학생이 스타벅스에 가듯 10대들은 편의점에 간다. 1000원짜리 과자 한 봉지를 사면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편의점은 알바 점원과 CCTV 덕분에 안전하다. 중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자신들만의 안전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편의점이다. PC방도 이들의 용돈 내에서 빌릴 수 있는 공간이다. 1500원가량이면 한 시간 동안 PC방을 전세 낼 수 있다. 학원과 집에서 그들만의 사적 공간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은 PC방이나 편의점에서 삼삼오오 모여 부모의 감시를 벗어난 자신들만의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학교, 학원, 집 모두 부모 감시하의 공간이다. 청소년에게는 감시에서 벗어난 사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학생이 스타벅스에 가듯 10대들은 편의점에 간다. 1000원짜리 과자 한 봉지를 사면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편의점은 알바 점원과 CCTV 덕분에 안전하다. 중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자신들만의 안전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편의점이다. PC방도 이들의 용돈 내에서 빌릴 수 있는 공간이다. 1500원가량이면 한 시간 동안 PC방을 전세 낼 수 있다. 학원과 집에서 그들만의 사적 공간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은 PC방이나 편의점에서 삼삼오오 모여 부모의 감시를 벗어난 자신들만의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공간을 완전히 소유할 수도 없고, 1등을 할 수도 없는 청소년들은 점점 게임 속 사이버 공간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금은 더 작은 스마트폰 스크린 속 공간으로 숨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 차라리 30년 전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붙잡혀 있었던 야간 자율학습실이 그리울 정도이다. 그때는 그곳이 감옥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야간자율학습실은 청소년 시기에 공식적으로 부모를 떠나 있을 수 있게 해준 우리만의 거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비용 대비 공간을 빌리는 순서는 가장 저렴한 편의점부터 PC방, 커피숍, 노래방, 모텔 순이다. 우리의 주거 공간에 사적인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청소년은 편의점과 PC방으로, 대학생은 커피숍과 모텔로 가고 직장인은 차를 산다. 우리 도시의 각종 방 문화는 부족한 사적 공간과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2/2017071203226.html
'교양있는삶 > 사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습관이 좋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 (0) | 2018.01.08 |
---|---|
[백영옥의 말과 글] 감정의 온도 (0) | 2018.01.08 |
[朝鮮칼럼 The Column] "아메리칸 드림, 핀란드에서 펼쳐라?" (0) | 2018.01.07 |
[김현수의 뉴스룸]예쁜 레이저, 심리스 아이폰 (0) | 2018.01.07 |
[동서남북] 세서미 스트리트의 줄리아가 그린 희망 (0) | 2018.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