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7. 16:35
두 달 전쯤 미국의 유명 어린이 TV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에 '줄리아'라는 이름의 여자 인형이 새로 등장해 화제가 됐다. 48년 방송 역사상 첫 자폐아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네 살인 줄리아는 그림 그리기에 열중할 땐 친구들이 불러도 반응하지 않고, 갑자기 웃거나 이상한 소리를 낸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에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줄리아를 통해 시청자에게 자폐가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이해시켰다.

한국에선 자폐성 장애와 지적장애를 합쳐 발달장애라고 규정한다. 국내 등록 장애인 250여만명 중 지적장애인이 20여만명, 자폐성 장애인은 2만여명 정도이다.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뇌병변 등의 장애가 겹친 발달장애인도 상당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자폐증 아동 캐릭터 줄리아. /EBS 화면캡처
발달장애인은 자기주장이나 권리를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므로 여러 유형의 장애인 중에서 가장 소외되고 차별받는 약자(弱者)에 속한다. 19년 동안 소 축사 옆 쪽방에서 살며 강제 노역을 했던 고모(48)씨, 10여년 동안 '거짓말 정신봉' '인간 제조기'라는 글자가 적힌 몽둥이로 맞아가며 타이어 수리점에서 일했던 김모(42)씨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발달장애인 사례들이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청소년기엔 학교에 다녔어도 성인이 되면 대부분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것도 문제다. 얼마 전 광주광역시에선 발달장애가 있는 20대 여성이 아파트 12층 난간에 매달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 어머니가 15분간 필사적으로 딸을 붙들고 있는 사이 경찰이 출동해 구조했다. 이 장애 여성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지 하루 만에 이런 소동을 벌였다고 한다. 집과 병원 외엔 갈 곳이 없었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국가가 치매를 책임지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발달장애도 포함하길 바란다. 국가와 지자체가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욕구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지원하면 발달장애인 가족의 삶의 질까지 높여줄 수 있다. 소수만을 위한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을 도울 전문 인력을 양성하면 새 정부가 추구하는 일자리 늘리기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전 세계 140여 나라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자폐아 줄리아'의 인형을 움직이는 여성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13세 아들을 두고 있다고 한다. 사람과 동물, 몬스터, 요정 등 다양한 캐릭터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서미 스트리트는 TV 속 가상의 세계다. 하지만 우리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깨치는 순간, 이 이상향은 현실로 다가온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1/2017061101797.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