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7. 16:32

'시인의 경지에 이른 과학자'상이라는 게 있다.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글솜씨를 발휘한 저자에게 주는 상이다. 1993년 미국 록펠러대학이 제정했다. 역대 수상자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네 명이나 됐다. 아인슈타인도 글을 잘 썼다. 우연이 아니다. 생각을 체계적·합리적·논리적으로 펼치는 것은 무엇을 하든 필수다. 미국 의대 시험에서도 에세이를 중시하는 이유다.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서구 고등교육의 근간은 수사학(修辭學)이다. 글로든 말로든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방송을 보면 길 가는 아무한테나 마이크를 들이대도 자기 생각을 풍부하고 논리적으로 얘기한다. 우리는 그저 "너무, 너무" "… 같아요"만 연발한다. 앞뒤가 뒤죽박죽이어서 글로 옮겨 놓으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도 없다. 때론 한국어를 배운 지 3~4년 된 외국인이 우리보다 더 조리 있게 한국말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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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예부터 글을 잘 쓰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걸 강조했다. 이런 전통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다 한국에 들어온 사람 불만 중 상당 부분이 글쓰기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객관식 문제 한두 개 맞히는 데 목숨 거는 세상에선 글쓰기 교육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이상해진다.


▶올해 초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신입생 글쓰기 평가를 했더니 39%가 70점 미만을 받았다. 주제를 벗어난 데다 비문(非文)에 맞춤법도 엉망이다. 채점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나 제대로 평가하면 점수는 훨씬 더 떨어질 것이다. "거시기하다"는 등 비속어, 인터넷식(式) 엉터리 문체가 과제물에 넘쳐난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요즘 신입 사원은 영어보다 국어 실력이 문제"라고 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20년간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한 낸시 소머스 교수가 그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어느 분야에서든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짧은 글이라도 매일 쓰라. 그래야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하버드 대학 신입생은 한 학기 적어도 세 편 에세이를 쓴다. 교수가 일일이 첨삭 지도한다. 사회에서 리더가 된 졸업생에게 '성공 요인이 뭐냐'고 물었더니 가장 많은 답이 '글쓰기'였다. '능력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이란 질문에 대한 답도 단연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기술이 아니다. 생각의 근력(筋力)을 키우는 일이다. 생각하는 힘이 없는 사회는 주관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냄비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갈등도 빈발한다.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우리 모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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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