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7. 23:53

美, 소득 따라 교육 격차 커지고 한국처럼 자녀의 미래에 집착 
핀란드·스웨덴 등 북구 나라는 '노르딕 모델'로 자녀 독립 돕고 
자신의 꿈 펼칠 수 있게 지원… 청년의 미래 위한 제도로 참고를


우리 아들딸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예전에는 개인의 신분 상승 기회가 보장된 국가로 흔히 미국을 거론했다.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각고의 노력 끝에 사회 최상층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많았고, 수백만명의 이민자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했기에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인가? 그렇지 않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미국은 오히려 다른 나라에 비해 상향 사회 이동이 매우 적다. 최저 소득 구간의 사람들이 상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계속 빈민으로 남는 비율이 훨씬 작은 나라는 오히려 북유럽 국가들이다. 이런 사실을 두고 영국 노동당 당수였던 에드 밀리밴드는 이렇게 말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려면 핀란드로 가라."

오늘날 국가 경쟁력과 삶의 질 면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나라, 행복하게 살고픈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로 꼽히는 곳들은 핀란드·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아이슬란드 등 소위 노르딕(Nordic) 국가들이다. 혁신 국가, 국가 경쟁력,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일과 삶의 균형, 행복 지수, 청소년 학업 성취도 같은 조사를 할 때마다 노르딕 국가들은 모두 최상위권에 들었던 반면 미국은 순위가 훨씬 뒤처졌다.

아메리칸 드림은 어느덧 '미국병'으로 미끄러져 버린 것 같다. 그 증상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이 교육 문제다. 갓난아이 때부터 좋은 유치원 들여보내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고, 좋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잘사는 지역에 집을 얻어야 한다. 피아노나 무용 같은 과외 교육시키기 위해 어머니들이 돈 대고 운전하느라 골수가 빠질 지경이다. 명문대학 입학 역시 많은 경우 부모의 능력에 좌우되고, 엄청난 학비도 부모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미국 중산층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너무 크게 희생한다. 반대로 저소득층 아이들은 그런 경쟁에서 일찌감치 뒤처져서 중등 교육부터 이미 포기 상태에 빠지곤 한다. 어렵사리 우수한 대학에 들어간다 해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자연히 불평등의 대물림이 영속화하는 경향이 커졌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그토록 큰 희생을 치른 결과 모두들 행복해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엄마 손에 이끌려 자란 아이들이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는 어렵다. 많은 미국 대학생들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부모에게 문자나 전화 통화로 보고를 하고, 명문대학의 여학생들이 부잣집 남자 만나 결혼하는 게 꿈이라는 조사도 있다. 시간이 흘러 부모가 늙으면 지난날의 '투자'에 대한 반대급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중년의 성인들이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데에 완전히 얽매여 의존 상태가 역전된다.

미국 사회의 일들이 우리나라와 너무 흡사하여 놀라울 지경이다. 두 나라 모두 부모 자식 간에 서로 과도하게 얽매여 사느라 정작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 중 하나가 '노르딕 모델'이다. 아이들은 십대 후반이면 자기 삶을 찾아 부모 곁을 떠나고, 부모 역시 자식의 삶에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초·중등 교육뿐 아니라 대학 교육도 무료이니 수학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대학교 진학이 가능하지만, 굳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부자가 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며 잘 살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병원비가 거의 무료일 정도로 우수한 사회보장제도를 이용하며 살다가 나이 들면 시설 좋은 양로원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의 인간관계는 너무 메마르고 비정한 게 아닐까? 생각하기 나름이다. 과도한 의존과 부담에서 벗어날 때 오히려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 생각이다.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노르딕 국가들의 단점도 언급하는 게 옳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모두 우울증, 알코올중독, 자살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행복한 사회라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흔히 북유럽의 혹독한 겨울 날씨를 거론하지만, 자연만 탓할 게 아니라 분명 이 사회 시스템이 안고 있는 심각한 결점들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남의 나라의 좋은 제도를 배워서 가져온다고 그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례를 참조하되 결국은 우리에게 맞는 체제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누가 만드는가? 현 정부도, 다음 정부도 조만간 답을 줄 것 같지는 않다.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인 청년들이 새로운 꿈을 꾸고 미래 사회의 새 제도를 연구해보아야 한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1/2017071103438.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