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5. 22:44

과거 일부 사학이 주장해 파문이 일었던 ‘기여입학제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8일 김황식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기여입학제가) 가난하고 능력 있는 학생들을 위해 100% 쓰인다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논의된 바 없다”고 못박았지만, 찬반론자 사이에서는 ‘이제는 도입해야 할 때’라는 의견과 ‘사실상의 교육 카스트’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찬반양론을 들어본다.




기여입학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요즘 대학 등록금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추락하는 지지도를 회복해볼까 하는 기대에서 느닷없이 꺼내 든 ‘반값 등록금’ 카드가 일파만파를 일으키며 촛불시위로 비화하는가 하면, 언론은 앞을 다투어 우리나라의 대학과 교수들을 싸잡아 질타한다. 이러한 비판 중에는 극히 소수의 부정적인 사례를 침소봉대한 부분도 있고, 대학이 겸허히 수용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송구스런 마음도 있고 다른 한편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반값 등록금을 제안한 여당도 정부도 모두 뾰족한 해결책은커녕 명확한 문제의식조차 없는 듯 보이며, 야당은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생각만 하는 듯하다. 이런 와중에 며칠 전부터 기여입학제가 재론되기 시작했다. 사실 ‘기여입학제 불가’는 과거 참여정부가 일관되게 채택한 3불 정책의 하나였다. ‘대학 입학권을 돈 주고 산다’는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거부의 논리였다. 이는 다수 국민들의 정서이기도 했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은 기여입학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이 글을 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대학 입학을 돈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입장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여입학제에 대해 진지하고 신중하게 재고해볼 때인 것 같다.


우리나라 대학의 절대다수는 국고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립대학이다. 일전에 여당의 원내대표가 ‘기부금의 활성화’ 운운했는데, 우리 대학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발언이다. 우리 현실에서 대학에 대한 기부는 극소수의 최고 명문대학에 집중된다. 기부할 사람은 생각이 없는데 대학이 기부를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해 봐야 아무런 실효도 거둘 수 없다. 어떤 정치인은 대학보고 수익사업으로 재정을 충당하라고 하지만, 이 또한 무지의 소치다.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주식투자를 통해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하버드대의 경우 가장 큰 수익사업은 토지 임대업이다. 더욱이 우리의 대학들보고 주식에 투자하라는 것은 위험한 도박을 하라는 주문이나 다를 바 없다.


대부분의 우리 대학들은 상시평가체제로 인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재정이다. 그간 부지런히 교육시설과 연구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음에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돈 쓸 데는 많지만 이를 구할 수 있는 경로는 제한되다 보니 대다수의 사립대학들이 등록금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여입학제는 등록금 부담을 경감하는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 기여입학의 대상은 정원 외로 하고 그 상한선은 물론 일정한 자격기준을 명시하며, 기부금은 오직 장학금으로만 사용하자는 것이 필자의 구상이다. 기부자의 직계 자녀는 기여입학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든지, 기부 일시로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 기여입학을 허용하는 것도 이 제도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부자들이 돈으로 자녀들을 대학에 입학시킨다’는 생각에서 ‘부잣집 자녀 하나를 기여입학시킴으로써 수십명의 어려운 학생들을 장학금으로 공부시킨다’고 발상을 전환해볼 수는 없을까?


보기에 따라서는 현재 소수의 명문 사립대들이 채택하고 있는 예체능 우수자 선발도 일종의 정원 외 특별선발이라는 점에서 기여입학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예체능 우수자들이 이들 대학의 홍보에 기여한다면, 기여입학제는 어려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지난 10년간의 대학 등록금 인상 추이를 관찰해보면, 참여정부 시절의 인상폭이 가장 컸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579만원이던 사립대 등록금 평균이 2008년에는 739만원으로 4년 사이에 260만원이 증가했는데, 2010년엔 평균 754만원이다. 참여정부가 대폭적인 인상을 주도했을 리는 없겠지만, 이 기간 정부의 대학정책은 좀더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대한 가정법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기여입학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면 지금의 등록금 사태는 어떤 양상을 띠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부유층이 반값 등록금에 기여하는 법



지난해에만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 대학생이 5만3000여명에 이른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최근 대학생 6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8.9%가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 다음 학기 휴학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학이 정상적인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김황식 총리는 황당하게도 기여입학제 도입을 언급하고 나섰다. 국민 여론과 사회적 합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부유층에게 기여입학금을 받아 등록금 인하에 쓰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여입학제는 이명박 정부가 3불 제도(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금제 금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집권 이후 국민 여론을 의식하여 추진을 사실상 포기했던 정책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지 말아야 할 첫째 이유는 우리 사회가 부모를 잘 만나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처럼 통합 전형자료 중의 일부로 기여금을 고려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부모의 경제력과 신분이 대학을 결정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중학교와 자율형 사립고 제도로 중·고등학교에서도 교육의 계층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인데 대학에서 기여입학금 제도마저 허용된다면 그나마 형식적으로 유지돼온 ‘교육 기회의 평등’까지도 허무는 것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21세기 한국 사회에 교육제도라는 이름으로 도입되는 격이다. 헌법 31조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다”에 담긴 뜻은 결코 부모의 경제력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기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둘째, 대학의 빈익빈부익부 구조를 심화시키게 된다. 미국의 경우에도 이 제도는 하버드대학 등 일부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부유층이 거액의 돈을 내고 자녀를 보내려고 하는 대학은 일부 상위권 대학일 것이다. 이번에 반값 등록금 문제가 제기되면서 ‘조중동’조차도 일부 사립대학의 과다한 적립금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기여입학금은 일부 대학에 편중되고 지방의 사립대학과는 거리가 멀게 되면서 대학의 서열화를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



교육전문지 <오늘의 교육> 5·6월호는 특집으로 ‘대학의 교육 불가능’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읽은 어느 학생의 수기에 “아르바이트는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이고, 장학금은 사연을 팔아 학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지금도 부모가 가난한 학생들은 온몸으로 경제력의 차이에 따른 차별을 받으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대학 입학 과정에서부터 원천적인 차별이 존재하게 될 경우에 대부분의 학생과 부모들이 겪게 되는 좌절감을 누가 씻어줄 것인가!


반값 등록금의 재원을 마련하는 올바른 방법은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을 폐지하는 것이다. 부유층이 반값 등록금 실현에 기여하는 것은 기여입학금으로 자녀들의 입학을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에 걸맞은 세금을 내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지금도 공교육과 사교육에 걸쳐 우월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처지에서 뒷문으로 대학을 가는 통행증까지 얻는 것은 공정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4대강 사업에 쏟아붓고 있는 예산을 대학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등교육 재정 확충 예산으로 전환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2학기 등록금 청구서에 반값 등록금이 찍혀 나오도록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거리에 나선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4·27 재보선에서 표출된 민심에 대해 정부로서 대답해야 할 최우선적인 과제일 것이다.


한만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argument/482183.html

http://www.hani.co.kr/arti/opinion/argument/482184.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