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4. 10:28

"우리는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 사회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어떤 사석에서 들었던 얘기다. 흥부와 놀부의 사회란 어떤 것일까. 매사를 선(善)과 악(惡)의 이분법으로 보는 시각을 말한다. 사람을 볼 때도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어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세상이 그럴까. 우리 주변에서 어떤 때는 착한 사람이다가 어떤 때는 나쁜 사람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서양 사회는 사람관(觀)이 우리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야누스나 '지킬 앤드 하이드'의 사회란 생각이다. 로마신화에 나오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나 학식이 높고 자비심이 많은 지킬 박사가 때로는 추악한 하이드로 변신한다는 '지킬 앤드 하이드'에 익숙한 문화다. 이런 시각은 인간은 선·악이란 두 가지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양면성(兩面性)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살다 보면 나 스스로가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으로 결정돼 있는 게 아니라 선택과 결정의 순간마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선과 악이 충돌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마련이다. 더욱이 그렇게 선과 악이 충돌한 결과는 100대0이 아니라 51대49인 경우가 더 많다. 간발의 차이로 때로는 옳은 일을 하고, 때로는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판단과 선택을 좌우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때로는 내가 배운 교양과 지식일 때도 있고, 때로는 종교적 신념, 때로는 사회적 규율과 시스템이다. 우리 사회가 한발 더 나아가려면 세상을 '지킬 앤드 하이드'로 보는 시각을 흡수해야 한다. 그래야 관용도, 포용도, 소통도 생기는 것이다.

'흥부와 놀부 사회'에 대한 얘기를 하던 시점은 광우병 사태가 막 진정될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 사회는 '광우병에 걸린 소를 국민에게 먹이려는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 대(對)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전쟁'을 치른 직후였다. '어떤 대통령이 온 국민을 죽일 광우병 소를 수입하겠느냐. 이건 야당과 좌파의 대선 불복 운동이다'는 시각과 '미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국민 건강을 팔아먹었다'는 주장이 맞붙었다. 광우병 사태는 매사를 선과 악으로 나눠 봐야 직성이 풀리는 흥부·놀부 사회에서나 가능한 소모전이었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면 명쾌해 보이고, 단순해 보이고, 후련하다. 그런데 그런 시각으로는 세상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며 각종 대책을 고민 중이다. 그런데 고민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흥부와 놀부를 찾아내서 규정하는 데 있는 듯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왜 세월호를 책임져야 할 선원들의 내면에서, 또 화물을 적정량 실었는지 따져야 할 한국선급 직원들의 마음에서 흥부 대신 놀부가 판을 쳤는지 따져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 자리에 누가 가더라도 흥부가 이길 확률이 더 높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흥부와 놀부'의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인열 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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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