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놈니제이션'이란 표현을 몇 해 전 어느 교수에게서 들었다. 조선시대 신분이 낮은 이를 낮춰 부르는 '상놈'이란 말과 '근대화'를 뜻하는 영어 '모더니제이션(modernization)'을 더한 조어(造語)다. 한국의 근대화는 한마디로 '상놈화' 과정이라는 과격한 주장이었다. 글이나 논문이 아니라 사석에서 한 말이기에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때는 우리 학계에서 근대화 논쟁이 뜨겁던 시기였다. 한편에서는 조선후기에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씨앗이 있었고 근대화로 가는 동력이 있었다는 '자본주의 맹아론'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했다. 이 논의는 일제의 폭압적 수탈로 자주적 근대화의 길이 가로막혔다는 '식민지 수탈론'으로 이어진다. 다른 한편에는 내재적 발전론 및 수탈론을 민족 감정에 호소한 비논리적 담론이라고 비판하면서 통계와 실증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에 비로소 자본주의 경제발전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있었다. 두 논의를 수렴하면서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식민지 민중이 스스로 참여해 경제성장을 이룬 점을 강조하는 '식민지 근대성' 개념도 나왔다.
이들 근대화 논의는 서로 대척점에 있지만 모두 경제 발전을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놓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덕영 독일 카셀대 강사는 최근 낸 책 '환원 근대'에서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에서는 공히 근대화가 경제 외에도 다양한 삶의 영역을 포괄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고려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원하는 우리 사회 일부 모습은 정신이나 문화 측면에서 '상놈니제이션'이란 표현이 적절하다. 안전에 관계없이 컨테이너 한 개라도 배에 더 싣는 게 이익이라는 인식,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키고도 도망 다니는 행태는 정신의 상놈니제이션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우리들 보통 사람에게도 유사한 인식이 스며들어 있다. 악다구니하며 떼를 쓰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 교차로에서 꼬리물기를 하더라도 나만 지나가면 그뿐이라는 의식 수준은 사소하지만 상놈니제이션의 진행을 보여준다. 체면이 밥 먹여주지 않고, 예의와 염치가 돈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서구의 근대화는 귀족 문화가 확산하면서 교양을 갖춘 시민이 탄생하는 과정이었다. 시민 계층은 근대화를 통해 귀족만 즐기던 모차르트 음악 같은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시민 정신이 싹텄다. 반면 우리 근대화는 좋은 의미의 양반 문화마저 전면 부정하고 폄훼했다. '양반'이란 말은 우리 일상용어에서 욕설에 가까운 말이 됐다. 양반이 중요하게 여기던 체면이나 예의·염치는 냉소의 대상이 됐다. 이는 식민지와 전쟁 같은 험한 역사를 거치면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놀라운 압축 경제성장은 결코 죄(罪)가 아니다. 다만 의식(衣食)이 족하면 예절(禮節)을 안다고 했다. 이제 정신의 '양반니제이션'이 필요한 때 아니겠는가.
이한수 문화부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22/20140622024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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