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4. 10:16

공공디자인의 전통과 현대

 

- 다시 생각하는 공공성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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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평론가  최 범 

 

정자나무를 생각한다

 

 여기 나무가 하나 있다. 마을 가운데 우뚝 서있는 커다란 나무. 우리는 이런 나무를 정자나무라고 부른다. 정자(亭子)와 같은 나무라는 뜻이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날씨가 무더워지기 시작하면 마을 앞에 있는 큰 정자나무 아래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들었다. 작은 정자나무는 내 어린 시절에 없었으므로 우리들은 큰 정자나무 아래로 모여들어 놀았다. 정자나무는 어린이들의 공동 놀이터요, 마을 어르신들의 야외 사랑방이요, 마을의 대소사 일이 논의되던 진뫼마을 국회의사당 같은 역할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할 때 고함을 치며 시끄럽게 싸우기도 하는 곳이어서 외지인이 지나가다가 쉬려면 마을 사람들 눈치를 보며 한 쪽에 가만히 앉아 있다 조용히 떠나는 그런 곳이었다...” 1)

 

흔히 한국에는 광장문화가 없다고 한다. 물론 광장이 없었기 때문에 광장문화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광장은 없었지만 광장문화는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다. 물론 우리식대로 말이다. 광장이 공간적 개념이라면 광장문화는 관계적 개념이다. 그러니까 광장이라는 공간은 없었지만 광장이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관계는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정자나무이다. 길가나 마을 한 가운데에 서있는 정자나무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만남을 발생시키고 소통을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관계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장치였다.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정자나무가 곧 광장이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광장문화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서구적인 기준으로 우리 문화를 재단하는 일에 다름아니다. 전통적으로 높은 수준의 공동체문화를 일구어온 우리에게 관계의 공간이 없었을 리는 없다. 우리의 전통에서 얼마든지 그런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물론 마당이라는 것도 있었다. 광장을 마당과 비교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마당은 대체로 건물에 의해 구획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완전히 열린 공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자나무만큼의 개방성과 접근성을 가지지는 못한다. 그리고 정자나무라는 말이 나왔을 정자라는 건물 형태도 중요한 공유시설이기는 했지만, 위치나 공간적 규모에서 볼 때 정자나무에 비할 바는 못된다. 그렇게 보면 확실히 마당이나 정자보다는 정자나무가 훨씬 더 공공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정자나무야말로 한국적 광장문화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정자나무는 자연물이지만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기 때문에 ‘인공화된 자연(Man-made Nature)’, 즉 요즘식으로 말하면 조경디자인이다. 하지만 단순한 꾸밈의 조경을 넘어서 완벽하게 공공성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개념으로 공공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그것은 서양의 광장처럼 형태에 의해 기능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용에 의해 기능이 창출되는 것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정자나무가 정자나무인 것은 나무의 형태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참여와 사용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한국의 보자기를 닮았다. 고정된 형태에 의해 기능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용의 방식에 따라서 변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연함과 상호관계의 미학이 잘 녹아 있다.

앞에서 인용한 글에서처럼 정자나무에는 만남과 놀이와 휴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정자나무에는 다양성과 개방성과 소통이 모두 공존했던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공공디자인의 요건을 넘치게 충족시킨다. 그런 점에서 정자나무를 한국 공공디자인의 원형으로 생각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서양에 광장이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정자나무가 있었다.

 

근대화와 공공성의 변용

 

 한국 사회는 근대화를 거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런 과정에서 전통적인 공공성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공공성은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는 ‘공공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오늘날의 공공성은 전통사회의 그것과는 다르다. 전통사회의 공공성은 공동체성(Communality)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혈연과 지연 같은 자연적인 조건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 현대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그에 비해 지금 우리가 말하는 공공성(Publicness)은 근대 시민사회의 공공성이다. 전통사회의 공동체성이 공동사회(Gemeinschaft)라는 조건에 기반한 것이라면, 근대 시민사회의 공공성은 사회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이익사회(Gesellschaft)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 점에서 전통사회의 공동체성과 근대 시민사회의 공공성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역사에는 연속성과 단절이 함께 존재한다. 이는 한국 근대사도 마찬가지이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사회에서의 공공성의 운명은 좀더 복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즉 전통적인 공동체는 해체되었지만 전근대적인 가치는 여전히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이러한 것이 근대화의 모순과 결합하면서 구조적으로 더욱 악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의 근대는 ‘식민지적 근대’로서 내용적으로는 ‘공공성 없는 근대화’라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는 전체적으로 볼 때 그 외형은 매우 현대적이지만 실제 내용은 전통적인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다. 이것을 이른바 한국 근대의 부정합 모순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이러한 특성은 바로 공공디자인의 성격을 결정한다. 왜냐하면 공공디자인이란 기본적으로 근대 시민사회에서의 디자인의 한 양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과 같이 근대적인 공공성 자체가 없는 사회에서 공공디자인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순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 공공디자인의 과제는 더욱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한국의 공공디자인은 이중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디자인의 공공성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공공성까지도 창출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 디자인의 성격과 공공성

 

 흔히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격으로 ‘강한 국가’와 ‘약한 시민사회’를 든다. 식민지, 전쟁, 경제개발을 거치면서 국가는 점차 거대해졌지만 그에 비례하여 시민사회는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는 근대화 과정을 통해 지나치게 성장한 ‘과대성장국가(Overdeveloped State)’로서 매우 억압적이면서도 계몽자적인 성격을 띤다. 사회의 모든 영역이 국가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되었다. 전쟁에서부터 헤어스타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디자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 디자인의 국가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디자인 진흥(Design Promotion)’ 정책이다. 디자인 진흥정책은 1960년대의 개발 드라이브 정책의 부산물로서 디자인을 경제개발이라는 국가 목표의 종속변수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1960년대 중반부터 국가 주도의 디자인 진흥정책이 추진되었고, 이는 한국 현대디자인의 성격을 주조한 매우 강한 구조적 요인이었다.

디자인 진흥정책을 뒷받침한 것은 이른바 ‘미술수출’ 이데올로기였다. 1967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술수출’이라는 휘호를 하사(?)하였는데, 이는 최고 지도자가 한국 디자인계에 내린 명령에 다름아니었다. ‘미술수출’은 한국 현대 디자인 이념 2)의 창설 효과를 가지며 오늘날까지도 거의 유일한 디자인 이데올로기로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국가 주도의 디자인 진흥은 1970년대 이후 민간 부문의 발전에 따라 상대적으로 그 영향력이 축소되지만, 그러나 한국과 같이 강한 국가주의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민간 부문이 국가 정책에 영합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국가와 기업 간의 갈등은 잠복되어 있을 뿐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현대 한국은 식민지 유산을 계승한 지배 그룹과 경제 개발을 최고의 이데올로기로 삼은 집단에 의해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한국 디자인계 역시 이러한 이념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런 경우 사회 일반과 마찬가지로 디자인에서의 공공성은 인식되지도 실천될 수도 없는 낯선 가치일 수밖에 없다. 사실 그렇게 보면 2000년대 들어와 불기 시작한 공공디자인 붐은 다소 기이한 느낌을 준다. 지난 수 십 년간 사적 디자인만이 존재하던 한국 사회에서 공공디자인의 대두는 그 자체로 반가운 것임에 틀림없지만, 문제는 그것을 주도한 세력들이 너무나도 익숙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1960년대부터의 디자인 진흥정책은 산업 관료와 ‘교수-디자이너’ 3)들의 협력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들이야말로 디자인 진흥 세력의 중심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공공디자인 정책과 사업들이 바로 그 디자인 진흥세력에 의해 추진되는 것은 분명 모순된 일이다. 국가주의에 기반한 디자인 진흥정책은 공공디자인과는 그 이념에서나 실천 형태에서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디자인 진흥정책이 국가 중심적이라면 공공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시민사회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2) 서구의 근대디자인 이념이 윌리엄 모리스나 발터 그로피우스 같은 지도적 디자이너들에 의해 주도된 것에 비하면 한국의 현대디자인 이념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권력자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이는 한국 디자인이 국가 권력의 하위부문이었을 뿐 상대적 자율성을 갖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의 ‘디자인 서울’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3) 한국 디자인계는 크게 디자인 교수와 디자이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에서도 디자인 교수, 즉 ‘교수-디자이너’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한국에서 교수-디자이너는 단지 교수인 디자이너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대학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각종 국가 정책과 디자인 비즈니스에 관계하며 중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한국의 디자인 진흥정책은 기본적으로 산업 관료와 ‘교수-디자이너’의 협력에 의한 것이다. ‘교수-디자이너’를 ‘프로페자이너(Profesigner)’라고 부른다면, 정치가-디자이너는 ‘폴리자이너(Polisigner)’라고 부를 수 있다. 최근 국가 주도의 각종 공공디자인 정책과 프로젝트에는 ‘교수-디자이너’를 넘어선 ‘정치가-디자이너’, 즉 ‘폴리자이너’가 등장하여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차이들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채 추진되는 공공디자인 정책과 사업은 또 하나의 국가 프로젝트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의 익숙한 디자인 집단이 협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의 문제는 거기에 시민사회적인 문제의식과 실천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디자인 서울’ 정책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확대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경우에도 공공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정치가와 디자인 전문가들의 결합에 의해 ‘위로부터’ 추진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진정한 공공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근래 일련의 국가 주도의 공공디자인 정책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사유가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뼈저리게 증명하는 것은 다시 한 번 한국의 근대화가 공공성을 잉태하지 못했으며, 디자인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최근 이러한 현실에 대한 시민사회와 디자인계 내부로부터의 비판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의 단초를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한국 디자인의 공공성은 훨씬 더 넓은 사회적 차원에서의 공공성에 대한 의식과 실천에 의해서만 뒷받침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디자인의 공공성은 여전히 그 성과를 말하기 이전에 근본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아포리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는 공공성과 디자인

 

 공공디자인은 디자인으로 구현된 공공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결국 공공디자인은 한편으로는 디자인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한국의 디자인은 그러한 공공성을, 아니 한국 사회 자체가 그동안 근대적 공공성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한국의 현대 디자인은 한편으로는 국가에 의한 ‘위로부터’의 디자인 진흥에,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를 위한 디자인으로 치달아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디자인의 공공성이란 생각해볼 주제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 사회도 일정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내면서 새로운 단계로의 발전이 요구되고 있다. 디자인에서의 공공성이 요구되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우리는 개발국가를 넘어선 전망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배제된 공공성에 기반한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과제를 던진다. 따라서 이제는 탈개발국가를 지향하면서 디자인과 공공성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인 이전에 전통사회의 공동체성과 현대사회의 공공성의 차이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연속선상에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럴 때 공공디자인에서의 전통과 현대의 만남도 가능해질 것이다. 한국 공공디자인의 전통과 역사성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한동안 너나없이 두바이가 어떠니 빌바오가 어떠니 하고 떠들어대었다. 모두 앞뒤 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세계적인 디자인 명소라고 불리는 대상들에 대한 순례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던가. 도움은커녕 결국 몇몇 바람잡이들에 의한 또 한 번의 집단행동에 지나지 않지 않았던가. 그야말로 21세기의 뻘짓에 다름아니었다. 두바이와 빌바오를 배우자고 떠들던 자들은 바로 저 디자인 진흥세력의 후예들이다. 그들에게는 디자인이 갖는 전통과 맥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참고사항일 뿐이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 자신의 눈과 손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또 한 번의 소외된 발전으로 우리를 끌고 갈 뿐이다.

눈을 감고 옛날 동구밖의 정자나무를 떠올려보자. 거기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노인들이 장기두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가. 두바이나 빌바오가 아니라 정자나무에서 우리 공공디자인의 상(像)을 그려보는 것이 과연 엉뚱한 일일까.

 

*공공디자인엑스포 2010 심포지엄, 2010. 12. 16.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