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 12:28

한국, 票心 위한 복지의 '챔피언'… 그럴수록 국가는 위기 향해 돌진
1999년 슈뢰더·블레어 선언은 '복지는 개인 역량 키우게 도와야'
최근 늘어난 우리 사회 빈곤층, 지금 못 끌어올리면 미래 어두워

 

사회과학에는 딱히 법칙이랄 것이 없다. 자연과학의 숱한 법칙과 달리 사람이 사는 일은 공식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칙이라고 부를 만큼 예외 없는 원칙이 사회정책에도 하나 있다. '공적 혜택의 수혜자는 비용 부담자보다 세다'는 게 그것이다. 수혜자에게는 혜택이 중요하지만 비용은 전 국민이 같이 부담하기 때문에 희석된다. 그래서 찬성은 강하고 반대는 약하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새로운 혜택을 만들어 수혜자 그룹을 조성한 후 그들의 지지와 충성을 확보하는 데 골몰한다.

표심(票心) 때문에 복지를 늘리는 행태에 관한 한 우리나라 정치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2004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노인 빈곤 대책이란 명목으로 전체 노인 대상의 기초연금을 제안하고 나섰다. 스웨덴·캐나다·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 등 기초연금을 운영했던 나라들이 1980년대 이후 포기한 마당에 정부 여당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라 살림을 볼모로 노인 표를 잡으면서 여당을 곤란하게 하기 위한 정치 공세였던 셈이다.

2006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당과 어렵게 타협한 결과가 노인 중 70%를 대상으로 한 기초노령연금이라고 털어놨다. 제도의 장기적 지향이나 후대의 막대한 부담은 안중에 없었고 선정 기준 등 제도 설계도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로 이 제도의 수급 가구 소득 분포는 어이없을 정도로 뒤틀려 있다. 빈곤 대책임에도 동거 자녀의 경제력을 고려하지 않으니 최상위 부유층 노인의 절반 이상이 수급자이다. 반면 정작 빈곤 노인들은 그런 제도가 있는지도 몰라서 수급률이 낮다. 기초노령연금의 월 10만원 급여가 절실한 이들이 사실상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야당이 된 국회의원들은 법정 수급률을 1~2% 못 채웠다고 다그치니 담당 정부 부처는 소외된 노인을 배려하기보다 목표율에 근접하기 위해 애쓸 뿐이다.

결국은 사회가 지게 될 부담과 정책 합리성을 무시한 채 정치가들이 당장 선거에 이기는 것만 생각할 때 나라는 위기를 향해 돌진하게 된다. 그러다 막상 비상사태가 닥치면 궁여지책으로 정치가와 정치를 뒤로 물리고 전문가에게 나라를 위탁하기도 한다. 그리스 중앙은행장을 지낸 파파데모스는 작년에 그리스 총리로 덜컥 추대됐고, 경제학자인 몬티는 지금 이탈리아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선거로 당선된 자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울하게도 싫든 좋든 나라를 이끄는 것은 정치가이다.

그런데 모든 정치가가 정치적 계산만 좇는 것은 아니다. 위기는 위대한 정치가와 인간 정신을 고양하는 새로운 비전을 낳기도 한다. 영국의 디즈레일리 총리와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회가 극도로 분열됐을 때 자기가 소속된 보수당의 이념적 지향을 훌쩍 뛰어넘어 사회 통합의 비전을 제시했다. 반면 1999년 슈뢰더·블레어 선언은 복지 확대로 사회의 경직성이 고도에 달했을 때 좌파의 도그마를 자아비판한 통렬한 반성문이다. 디즈레일리와 루스벨트는 영국과 미국 정치 사상 가장 탁월한 리더십으로 위기를 돌파한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슈뢰더와 블레어는 사회 안전망이 개인의 책임을 면제해서는 안 되며 복지는 개인의 역량을 키워 주어지는 기회를 거머쥐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는 '제3의 길'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복지'라는 새로운 정책 흐름을 형성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런 외부 세계의 도저한 흐름에 등을 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근래 늘어난 광범위한 빈곤층은 지난 20여년간 급변해온 경제구조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이들이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절대 빈곤층이 550만명에 이른다. 이들이 노동시장에 안착하여 가능성을 펼치도록 역량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사회 통합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내일도 깜깜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과 사회와 글로벌 경제에 대한 깊은 통찰이 요구되는 우리 세대 최대의 도전이며 결코 선심성 복지로는 해결될 수 없다.

그간 급격히 깊어진 우리 사회의 바닥을 지금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는 이를 방치하여 생산과 복지 양면에서 집단적 역량을 망가뜨린 세대로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유력 대선 후보 세 명은 모두 이를 어떻게 타개하고 세계 속의 미래로 향할 것인지에 대해 괴이(怪異)할 정도로 침묵하고 있다. 2012년 한국은 연일 이해 그룹을 찾아다니며 공약을 떨구는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선명한 비전이 필요하다.

 

 

윤희숙 KDI 연구위원·보건복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31/20121031011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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