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4. 16:44

인프라 민영기업들은 얼마 안 되는 투자를 하고는 그 시설의 주인 노릇을 한다

지하철 9호선을 가끔 탄다. 쾌적하고 빠르다. 오르긴 했지만 요금도 괜찮다. 그런데 그 운영주체가 민간이란다. 새삼스럽다. 사회간접자본을 민간이 운영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다. 하긴 ‘서울시메트로9호선㈜’이란 이름을 가졌으니 헛갈리는 건 당연하다. ‘㈜’의 의미를 부러 해석하지 않는 한, 백이면 백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기업인 줄 알았을 것이다. 얄궂다.

도로/철도/항만/공항, 전기/가스/상하수도 시설 등을 ‘사회간접자본’이라 부른다. 굳이 왜 자본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직접적 생산수단은 아니지만 생산활동의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자본이니 사용료가 저렴해야 한다. 비싸면 생산활동에 부담이 된다. 그러니 정부가 소유하는 게 상식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소유하더라도 정부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소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이유는 독점의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누구나 써야 하고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용해 폭리를 취할 개연성이 높아서다.

자본이 욕심을 내는 건 당연하다. 경쟁 없이 돈을 벌 수 있으니 군침을 흘리는 건 본능이다. 이런 마당에 한국의 인프라 민영화는 ‘민자사업’이란 이름으로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지하철 9호선 사태가 그 진실을 말해준다. 인프라 민영기업들은 차려진 밥상에 수저 얹는 데 귀신들이다. 얼마 안 되는 투자를 하고 그 몇배의 돈이 들어간 시설의 주인 노릇을 한다. 적자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일정 수익까지 보장받는다. 물론 그 재원은 세금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다. 한술 더 떠, 대주주는 자신의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고리대금업까지 한다.

이런 일종의 특혜를 방조 혹은 조장한 것은 정치권력이다. 굳이 민간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대부분의 인프라는 건설 및 운영이 가능했다. 돈이 부족했다면 국채나 지방채를 발행했으면 될 일이었다. 대체 이들을 끌어들여 공공이 무슨 이득을 보았는가. 이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돈 이상을 어떻게든 회수해가는 자본가일 뿐이다.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끌어들인 건 특정 ‘의도’가 숨어 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정부는 문제가 되고 있는 ‘최소운영수익보장’ 제도를 완전히 없앤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불과하다.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일 뿐 민영화를 향한 질주를 멈춘 건 아니다. 오히려 정치권력과 자본의 결탁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케이티엑스와 인천공항 민영화 시도에서 보듯 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끈질기게 공공의 영역을 사유화하려 한다.

좋다. 자본주의 세상이니 공항도 항만도 도로도 민간이 투자해 운영할 수 있다. 단, 자신들의 돈을 들여 건설할 일이며, 그 흥망은 온전히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 그게 공정하다. 손해가 나면 세금으로 보전해준다거나 잘 운영되고 있는 기존 시설을 그야말로 날로 먹으려 하는 것은 경쟁의 원칙에 반한다.

민영화란 민간이 경영 주체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엔 함정이 숨어 있다. 여기서의 민간은 국민이 아니다. 소수의 자본가이다. 따라서 ‘민영화’라 부를 게 아니라 ‘사유화’ 또는 ‘사기업화’라 불러야 옳다. 당연히 사회간접자본의 사유화는 극히 제한되어야 한다. 금지하는 게 좋다. 그 자체가 공동체의 공유물로 존재할 때 ‘자본’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건 인프라에 대한 욕심도 화근 중 하나이니 줄여야 한다. 한국의 토건 인프라는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전 국토는 공사중이다. 정상은 아니다. 토건으론 경제를 살릴 수 없다. 이는 지난 4년 동안 충분히 입증되었다. 이젠 토건 시대를 끝낼 때도 되었다. 그래야 자본의 인프라 침탈 여지를 그나마 줄일 수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29556.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