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때 만들어진 긴급조치들은 하나같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력하고(수업거부를 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다), 믿을 수 없이 뻔뻔스럽고(긴급조치에 의한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판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지만(유신헌법의 개정을 주장하면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하여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역시 백미는 고려대학교에서 집회나 시위를 하면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 잡지에 연재하던 칼럼에 이 조항을 인용했더니 오타가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독재정권이 대학교에서 데모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 수는 있었겠지만 설마 특정한 대학을 꼭 집어서 그 학교 교내에서의 집회·시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었겠느냐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 촌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조항은 1975년 4월8일 제정된 긴급조치 7호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커녕 서글플 정도로 상식에 맞지 않는 법이 존재하던 때가 유신시절인 것이다.
이미 폐지된 지 오래된 긴급조치 얘기를 꺼내게 되는 것은 5·16에 대한 몇몇 인사들의 언급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분들은 “쿠데타가 아닌 군사혁명”이라고 하거나, “우리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줬다. 쿠데타이면서도 동시에 혁명이다”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현역 군인들이 총칼로 정권을 탈취했다는 점에서는 쿠데타로 보아야 하지만, 그 후 산업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는 부정적인 평가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유신을 낳은 5·16에 대해서 이런 평가를 하는 것이 어떻게 보수주의와 통할 수 있는지 지극히 의문이 든다.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보수주의를 전통적인 가치와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들은 대체로 절대적 진리 혹은 선의 존재를 믿고 현존하는 통치체제와 법질서를 긍정한다. 철학적으로 불가지론적 성향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이 기존 질서의 전복을 꿈꾸는 데 비해서 보수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체제 내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나는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진다는 점에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과연 무엇이 진정으로 용기있는 행동일까. 겁에 질려 미지의 해안으로 달려가는 것인가. 아니면 그전부터 가치있었고 아마도 앞으로 영원히 가치있을 것들을 위해 제자리를 지키는 것인가.” 이 말처럼 보수주의자가 가질 수 있는 긍지를 잘 표현한 것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쿠데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어떻게 ‘그전부터 가치있었고 앞으로도 가치있을 것들을 지키는’ 행동이 될 수 있을까.
새는 양 날개로 난다는 진부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진보와 보수는 때로는 서로 대립하고 때로는 서로 조화하면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두 개의 유효한 시각이다. 어느 한쪽이 완벽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편협한 생각이다.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강력한 진보가 필요한 것만큼 건강한 보수가 필요하다. 선거에 의해 구성된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하고 법질서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쿠데타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보수를 자임하는 모습은, 고려대학교에서 집회를 하면 처벌하겠다는 ‘법’을 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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