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원자력 새로운 대표상품, 1997년 개발 시작한 수출전략형
우여곡절 끝 표준설계인가 얻어… 작고 아담한 원전 선호國 많아
2050년까지 500~1000基 예상, 350조원 거대 세계시장 열린 셈
모든 상품은 시장을 전제로 개발되고 생산된다. 그러나 종종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상품이 있다. 시장을 잘못 예측했거나 시장의 변화를 한발 앞서 감지해냈거나 둘 중 하나다. 전자를 실패, 후자를 혁신이라 부른다.
21세기의 수많은 혁신 가운데 으뜸은 단연 스마트폰이다. 지난 2007년 등장한 아이폰이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은 아니었지만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시장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불과 수년 만에 아이폰은 휴대전화의 판도를 바꾸고 거대한 스마트폰 세계 시장을 만들어낸 것은 물론 MP3, GPS, 노트북 등 모든 휴대용 IT 기기시장을 새롭게 정의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계도 새로운 혁신에 도전한다. 1997년 개발을 시작한 중소형 일체형 원전(原電) SMART에 대한 표준설계인가를 4일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획득해서 중소형 원전 세계 시장 개척에 나서게 된 것이다. 표준설계인가(SDA)란 새로 개발한 원자로의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서 내주는 인·허가로 표준설계인가 획득은 곧 원자로 개발의 완성을 의미한다.
중소형 원전 세계 시장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시장 전망은 매우 밝다. 대형 원전을 짓기엔 경제력이 부족한 나라, 국가 전체 전력망 규모가 작아서 큰 원전이 부적절한 나라, 땅덩어리는 큰데 인구는 적고 흩어져 있어서 대형 원전을 지으면 송·배전망을 까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드는 나라, 오래된 화력발전소를 비슷한 크기의 원전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나라 등 작고 아담한 원전을 원하는 나라들이 꽤 많다.
미국 에너지부는 2050년까지 중소형 원전 세계 시장을 500~1000기(基)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 350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 열릴 준비를 마쳤는데 내놓을 상품은 SMART가 유일하다.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이 부랴부랴 중소형 원전 개발을 서두르고 있지만 빨라야 2021년 이후에나 건설이 가능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한국표준형원전(OPR 1000) 개발로 대형 원전 국산화를 마무리 지은 1997년 SMART 개발에 착수했다. 소규모 전력 공급이나 해수 담수화 시장을 겨냥한 수출전략형 원자로로 개발을 시작한 SMART는 중간에 개발 방향이 바뀌고 개발 작업이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위해 개발하는 것이라서 시장성이 없다는 비판에도 시달려야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답보 상태였던 SMART 프로젝트는 2008년 정부가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해 개발 재개를 결정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2010년 한국전력과 포스코·STX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이 컨소시엄을 이뤄 1000억원을 투자하면서 개가를 이루게 됐다.
미래를 내다보고 시장보다 앞서 상품을 준비한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되려면 SMART 수출이 성사돼야 한다. 혹자는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자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어서 SMART의 미래를 걱정한다. 하지만 SMART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개발돼왔으나 후쿠시마에서 드러난 문제점 중 상당 부분을 해결했을 만큼 뛰어난 안전성을 자랑한다. 예를 들면 대형 원전이 주요 기기들을 대형 배관으로 연결한 형태인 데 비해 SMART는 대부분의 기기를 하나의 압력용기 안에 설치한 일체형 구조다. 원전에서 발생 가능한 가장 심각한 사고의 하나가 배관이 깨지면서 냉각재가 유실되는 것인데 SMART는 이런 사고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한 것이다. 세계 최초로 인·허가를 획득한 중소형 원전인 SMART를 세계 각국에 수출한다면 우리는 아이폰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창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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