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5. 14:17

설레는 희망을 안고 모르는 도시에 살아보러 가는 일은 청춘의 특권이다. 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원제 L'auberge espagnole)'의 자비에(로망 뒤리스)는 25세의 프랑스 청년이다. 멀리 있는 하늘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이곳에서의 내 모습에 어쩐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그는 떠난다. 유럽 교환 학생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를 통해 그가 떠난 곳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이지만 사실 '그곳'이 어디인지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이곳'이 아닌 미지의 세계라는 것만으로 바르셀로나는 두려움과 매혹의 이름이 된다.

영화는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일 년간의 소소한 기록이다. 공항에서부터 좌충우돌한 끝에 어렵사리 구해 들어간 비좁은 숙소에서 자비에는 유럽 각국 출신의 또래 젊은이들과 하우스 메이트로 만난다. '5년 뒤 자신의 모습은?' 같은 엉뚱한 면접시험을 통과한 뒤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 세드릭 클래피쉬 감독, 로망 뒤리스·오드리 토투 주연, 122분, 프랑스·스페인, 2002년.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말 그대로 스페인식 아파트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문화가 복합적으로 한데 섞여 혼돈과도 같은 갖가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 속어(俗語)이기도 하다. 영국·독일·덴마크·이탈리아 등 서로 국적이 다르고 성격도 다른 젊은이들이 친구가 되어 더듬더듬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간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냉장고 안이 국경처럼 자연스럽게 구획 지어져 있는 장면 등은 유럽연합(EU) 시대에 대한 재미있는 은유이다. 좁은 아파트 안에서 그들은 각자의 생활방식과 영역을 존중하는 법을 체득한다. 그러면서 모든 인간은 원래 저마다 다르고 또 비슷한 존재라는 사실을 서서히 이해해 간다.

고향에 돌아온 후 자비에에게 아주 커다란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어땠느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고작 일 년이었는데요, 뭘"이라고 덤덤하게 웃는 것처럼 그는 스물다섯 살에서 스물여섯 살이 되었고 정부 기관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흔들림은 내부에서 먼저 일어난다. 자비에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어릴 때부터의 꿈인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이방인으로 살아보지 않았더라면,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를 통과하지 않았더라면 쉽게 하지 못했을 결심이다.


정이현 소설가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