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5. 14:12

“그 장관 부인이 몇 명인지, 자녀는 또 몇인지. 그중에서 제일 총애하는 부인은 누군지, 그 장관이 어느 자녀를 제일 아끼는지 아십니까?” “그게…. 파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중동에서 오래 사업해본 경험으로 하는 얘긴데…. 중요한 인물 만날 때 먼저 그런 것부터 챙겨야 해요. 선물 하나를 해도 본인에게 직접 주는 건 하책(下策)이에요. 본인만 만족하고 끝납니다. 사랑받는 부인에게 선물하는 게 중책(中策)쯤 됩니다. 부인이 좋아하고 남편도 고마워합니다. 제일 좋은 건 자식한테 주는 겁니다. 자식이 좋아하면 엄마가 고마워하고, 아버지까지 기뻐해요. 그게 상책(上策)입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쉽게 풀려요. 아시겠어요?”

지난 정부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지식경제부 장관과 대통령 사이에 오간 대화다. 한국 정부가 중동의 한 나라에서 장기 에너지개발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상대편 국가의 사업허가 결정권자를 만나러 떠나는 해당 부처 장관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당부했다.

옆에서 지켜본 한 경제부처의 장관은 “사업가로서 MB의 경험과 지식에 공무원 출신 장관들이 모두 혀를 내둘렀다. 해외자원 개발, 플랜트 및 무기 수출 등과 관련된 일이 있을 때마다 ‘달인(達人)급 세일즈맨’의 지적과 조언이 있었고 결과는 대부분 MB의 예상대로 됐다”라고 회상했다. 

이 전 대통령 재임 5년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여러 기준이 있을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월 셋째 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 전 대통령의 막바지 국정수행 지지도는 30.4%.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청와대를 떠났다고 보긴 어려운 수준이다. 

대통령이 바뀌자마자 여야가 국회 본회의에서 지난 정부의 최고 역점사업이던 ‘4대강 사업’ 입찰 의혹에 대한 감사요구안을 통과시키는 등 뒤끝도 개운치 않다. 4대강 사업에서 나타난 밀어붙이기식 업무추진, 상명하달(上命下達)식 의사소통 등은 건설업체 최고경영자(CEO)처럼 대통령직을 수행한 ‘이명박 스타일’의 특징이자 한계였다. 이와 관련해 그가 당선인 신분이던 5년여 전 정부 경제부처의 고위 관계자가 했던 얘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당선인이 서울시장 시절에 청계천이 자연 하천이었으면 복개(覆蓋)를 했을 거고, 서울 시청 앞이 잔디광장이라면 뚫어서 도로를 냈을 겁니다. 앞으로는 어떨까요.”

하지만 ‘대한민국 브랜드’를 파는 세일즈맨이란 측면에선 역대 대통령 중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 지난해 10월 독일 등에 밀려 불리했던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전 때 이 전 대통령은 막판에 다른 나라를 지지하던 각국 정상들에게 직접 전화해 한국에 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등에서도 그의 ‘톱 세일즈’ 능력은 빛을 발했다. 오죽하면 원전 수주를 뺏긴 일본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우리도 저런 세일즈맨 국가 수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을까. 고급 영어는 아니지만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확인된 것처럼 세계의 정상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할 정도의 ‘전투영어’ 실력도 갖췄다. 5년간 49차례에 걸쳐 84개국을 방문하고 비행기로 지구를 21.9바퀴 돌 만큼 건강과 부지런함은 타고났다. 

아들이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해외에서 미국 기업과 국가이익의 대변자로 활약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오바마 정부를 대신해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펼쳤다. 이제 한국도 나라를 위해 세계를 뛰어다니는 전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됐다. 마침 곱든 밉든 최고의 적임자도 생겼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일꾼’으로 일할 의지가 넘치는 전 대통령을 연금만 주고 은퇴시킬지, 아니면 ‘국가대표 세일즈맨’으로 활용할 것인지는 철저히 박근혜 대통령의 결심에 달렸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30228/53357344/1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