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4. 14:00

지지율 1% 내외의 여성 후보가 잘못 만들어진 공직선거법 때문에 대선 후보 TV토론에 끼어들어 지지율 50%에 육박하는 여성 후보에게 “나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반드시 떨어뜨리고 말겠습니다”라며 오만불손하게 대드는 장면을 보고 정말 놀랐다. 한국 정치판이 어쩌다 이 정도로 살벌해졌는지 모르겠다.

지난달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이 투표일을 10여 일 앞두고 NBC TV 심야 토크 쇼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인 커미디언 제일 레노는 그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부동산 재벌 다널드 트럼프가 오바마의 대학입학지원서와 성적표, 그리고 여권발급신청서를 공개하면 오바마가 지정하는 자선단체에 5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었다. 오바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트럼프와 나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린 어릴 때부터 자주 다투곤 했답니다”라는 조크로 트럼프의 제안을 일소에 부쳤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정치에는 유머가 있다. 1984년 레이건 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했을 때 나이가 73세였다. 5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상대 후보 먼데일 전 부통령은 TV토론에서 레이건의 고령을 문제 삼았다. 그러자 레이건은 “나는 후보의 나이를 문제 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먼데일 후보의 ‘젊음’과 ‘무경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조크로 역공했다. 정책 대신 대통령의 나이를 걸고 넘어진 먼데일은 자기 출신 주를 제외한 나머지 49개 주에서 완패하는 치욕을 당했다.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으로 존경받는 링컨은 가장 유머가 있는 대통령이기도 했다. 링컨은 정적을 공격할 때도 조크를 했다. 젊은 변호사 링컨이 하원의원으로 출마했을 때였다. 정견발표회에서 상대 후보는 링컨이 신앙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청중을 향해 “여러분, 천당에 가고 싶은 분들은 손을 들어보세요”라고 소리쳤다. 물론 모두들 높이 손을 들었으나 링컨만은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러자 그 후보는 “미스터 링컨, 당신은 손을 들지 않았는데, 그럼 지옥으로 가고 싶다는 말이오?”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링컨은 빙긋이 웃으며 “천만에요. 나는 지금 천당도, 지옥도 가고 싶지 않소. 나는 국회로 가고 싶소!”라고 응수해서 청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자기 연설 차례가 되었을 때 링컨은 “나의 상대 후보는 피뢰침까지 달린 호화저택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벼락을 무서워할 정도로 죄를 많이 짓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조크를 해서 또 청중을 웃겼다. 물론 링컨은 당선되었다.

유머 감각이 없는 정치인은 매력이 없다. 그래서 미국 정계에서 출세를 하려면 조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96년 1월 23일 클린턴 대통령이 국회에서 새해 국정연설을 할 때였다. 클린턴은 연설을 하기 위해 상원-하원 합동회의 의장단석 밑에 마련된 연단에 오르자마자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뒤에 앉아 있는 깅그리치 하원의장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본 깅그리치는 웃음을 터뜨리며 뭔지 한마디 했고, 클린턴 대통령도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국정연설을 시작했다.

클린턴이 준 종이에는 ‘State of the Union. Thank you and good night(국정연설문.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한다. 바로 전날 깅그리치 하원의장(공화당 소속으로 클린턴의 최대 정적이었다)은 한 기자로부터 “클린턴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무슨 말을 듣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고 “연설은 그만두고 인사만 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했었다. 이것을 클린턴이 전해 듣고 깅그리치의 말을 그대로 쓴 가짜 연설문 원고를 그에게 주었고 깅그리치는 웃으며 “이것을 액자에 넣어 걸어놓겠습니다”라고 대꾸했던 것이다. 얼마나 멋있는가!

한국에서는 언제나 이런 유머 있는 정치를 볼 수 있을까? 한국 정치가 살벌하고 잘 풀리지 않는 건 유머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영어속담에 ‘Laughter is the best medicine(웃음이 최고의 약이다).’이라는 게 있다. 웃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한국도 이제는 좀 웃으면서 정치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조 화 유 재미 칼럼니스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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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