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국민들을 위한 좋은 집이 돼야 한다.’
이 말은 복지천국 스웨덴의 복지이념인 ‘국민의 집’을 한마디로 정의한다. 지난해 <한겨레>가 6차례의 현장취재를 통해 기획연재한 ‘보편적 복지, 스웨덴의 길’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의료, 주거, 보육, 연금, 노동정책에 이르기까지 촘촘하게 마련된 사회안전망은 단 한명의 국민이라도 낙오돼 절망 끝에 내몰리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이 복지모델의 기틀을 닦았던 사회민주당이 2006년 정권을 내줬지만 이런 복지제도의 근간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스웨덴 국민들은 소득의 3분의 1을 꼬박꼬박 세금으로 낸다. 그러면서도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59%나 된다.물론 스웨덴 사람들이 처음부터 복지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의 집’이 탄생하고 완성되기까지는 엄청난 저항과 혼란이 있었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이런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가 있었다. 대화와 합의다. 그 한가운데 스웨덴의 ‘키다리 아저씨’ 타예 엘란데르가 있다.사민당 소속의 그는 1946년 10월부터 1969년 10월까지 무려 23년이나 총리를 역임했다. 총리 재임 중 11번의 크고 작은 선거에서 그는 모두 승리했다. 그리고 아직 정정한 68살의 나이에 젊은 후계자 올로프 팔메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주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사민당이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역사적인 대승을 거둔 바로 이듬해, 정치적으로 최정점에 있을 때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재임기간뿐 아니라 키(192㎝)도 커서 ‘가장 긴 총리’라는 별명으로 불려왔다.2차 세계대전의 혼란이 끝나지 않은 1946년 그는 전임 총리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총리 자리에 올랐다. 45살로 젊은데다 지명도도 낮은 그가 23년이나 총리를 계속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는 공공부문이 수많은 사회적 요구를 해결해주는 ‘강한 사회’를 꿈꿨다. 그 핵심은 복지정책의 확대였다. 당연히 세금 인상이 뒤따랐고 기업이나 이익집단들로부터 강한 반발이 있었다.이를 돌파한 엘란데르의 무기는 경청과 대화였다. 그는 매주 목요일 저녁 이른바 ‘목요일 클럽’(1948~1955)을 열어 기업과 노조 대표들을 초대했다. 참석자들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했다. 이런 대화의 정치는 총리의 여름휴가 별장인 하르프순드에서 매년 열린 ‘하르프순드 콘퍼런스’(1955~1964)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경제, 노동, 환경, 복지 등 거의 모든 사안이 논의되고 또 합의됐다. 서로 죽일 듯 미워했던 사람들도 함께 밥을 먹고 호수에서 노를 저으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대화와 합의로 스웨덴을 이끄는 동안 스웨덴은 주요 10개국(G10)에 포함된 부자국가로, ‘함께 잘사는’ 복지국가로 발전했다.우리나라는 지금 벼랑에 서 있다. 세계경제가 여전히 위기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서민의 삶은 경제집중화와 빈부격차 심화로 백척간두로 몰렸다. ‘자신들의 공을 인정해달라’는 기성세대와 ‘당신들이 만든 질서를 바꾸고 싶다’는 젊은 세대 간의 세대갈등도 심각하다. 성, 지역, 이민자 등 서로를 나누고 싸울 거리는 차고 넘친다.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마지막 역전의 기회가 남아 있다. 바로 19일 대선에서 행사할 ‘한 표’다. 누가 대화와 타협의 적임자인가. 누가 ‘국민의 집’을 만들 사람인가. 함께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이형섭 국제부 기자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55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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