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받았던 것 돌려주자 생각… 대학 여가디자인학과서 강의… 문화 관련 사회적기업 키우는 꿈
한류대학원
한류를 비즈니스로 활용 연구… 美·日과 달리 멀티유즈 안돼… 문화업체·中企 이종결합 절실
다음 정부에 바라는 일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탔다.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에 오른 뮤직비디오가 전세계에서 1억회 이상 재생되었다. 전세계에 한국문화의 자리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문화에 쏟아지는 관심을 한국사회는 어떻게 소화해내야 할까. '한류'라는 이 바람은 제대로 흘러가는 것일까. 9월에 문을 연 가톨릭대 한류대학원 유진룡(56 전 문화관광부 차관)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06년 청와대쪽의 인사청탁을 거절한 후폭풍으로 차관직을 자진사퇴하다시피 한 유 원장은 1979년 행정고시를 통해 문화공보부에 첫발을 디딘 후 27년간 문화행정에만 전념한 문화전문가면서 퇴임 당시 후배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공무원의 전범이라는 칭찬을 들어왔다. 이번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으로도 거론됐던 그에게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게 좋은가도 당연히 물었다.
_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동안 사회에서 받은 것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선 북한을 돕는 사단법인 봄의 이사를 맡아서 지원활동을 살짝 도왔고요. 을지대에서 와달라길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는 해도 놀아야 한다 쉬어야 한다는 없어서 그런 전문가를 키우는 학과를 만들자고 했어요. 2007년부터 신입생을 뽑았는데 여가디자인을 하려면 스스로도 잘 놀아봐야 하는데 학교가 그런 걸 체험시키는 투자에 너무 인색해요. 실습비 타낼 때마다 매년 학교랑 실랑이를 하는 데 지쳐서 첫해 입학생이 졸업하는 걸 보고는 (부총장까지 되었지만) 그만뒀습니다. 그리고는 서울사이버대학 사회복지대학원 사회서비스과정에 입학을 했어요. 사회적 기업을 키우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딱 그런 걸 가르쳐요. 세스넷이라는 단체를 통해 사회적 기업 만들려는 이들을 돕는 멘토링도 하고 있어요."
_왜 하필 사회적 기업이요?
"흔히들 문화산업을 키우면 부가가치가 커지고 고용이 창출되고 그러는데 실지로 고용이라는 게 불량고용이에요.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인 자리가 대부분이에요. 관광이나 여가, 문화예술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본인에게 경제적 기여는 적다면 그게 사회적 기업이지요. 을지대에 있을 때도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벤처를 해서 큰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보람을 느끼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도 생각하라고 강조했어요. 영국에서는 공예가들의 사업을 지원하는 콕핏아츠라는 사회적 기업이 아주 잘되고 있어요.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도 일종의 사회적 기업으로 성공한 사례인데 우리나라는 몇 십억을 들여서 악기를 사주는 시도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엘시스테마를 만들기 위해 예술가들과 지역사회가 청소년들을 설득해서 예술활동을 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결과만 보고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서두르고 과잉투자를 하니까 걱정이 듭니다. 몇 년전부터 청년인턴지원사업이니 사회적 기업에 대해 여러 부처에서 돈을 쏟아 붓는데도 정부 지원이 끊어지면 사회적 기업도 함께 망해버려요."
_한류대학원은 뭘 가르치는 건가요?
"한류를 어떻게 비즈니스로 접근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가르칩니다. 수강생도 무역회사 관광회사 제조회사 사람들이에요. 2년짜리 MBA과정과 한학기짜리 일반인을 위한 과정이 있습니다. 내년 3월에는 한국내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영어로 한국문화를 일러주는 최고위과정을 만들 계획입니다. 한류컨텐츠 산업 자체가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멀티유즈가 안되고 외부적으로는 이종결합이 안돼요. '겨울연가'도 드라마보다 관광산업의 부가가치가 더 컸는데 이런 게 계속 나오도록 중소기업에서 협업을 요청하면 케이팝이나 케이드라마를 만든 문화업체에서 거절을 해요. 타협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가격을 부르거나 '우리가 만들겠다'고 해요. 알고보니 케이팝이나 케이드라마를 힘들게 띄울 여타 업체들이 아주 시큰둥했다는 거에요. 피해의식이 남아있어서 이종간의 협업이 잘 안됐던 겁니다. 그게 안타까워서 이종결합을 돕는 플랫폼 구실을 저희 한류대학원이 해보려고 합니다. 코트라, 관광공사에 협력을 제안하니까 진작에 이런 것이 필요했다고 하네요."
_그런데 한류라는 표현은 올바른 거예요?
"사실 한류라는 표현을 안 좋아해요. 영어로 하면 웨이브(wave 파도)인데 그건 잠깐 생겼다가 없어지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개념이잖아요. 일본문화나 중국문화가 인기를 끌 때 재패니스웨이브나 차이니스웨이브라는 말을 하지 않았잖아요. 되려 혐한류가 반작용으로 생길 수도 있고요. 우리나라의 유명한 정치가가 외국인들 많이 모인 자리에서 '한류가 얼마나 인기인지 중동국가 가니까 여자들이 히잡을 벗어던지고 춤을 추더라' 그래서 이슬람 국가 사람들이 엄청 화를 냈다고 하더군요. 한류라는 것은 어찌 보면 세계 문화가 미국 일변도를 벗어나 다문화주의로 가는 흐름 속에서 한국의 어떤 문화컨텐츠들이 그들의 입맛에 맞았거나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문화컨텐츠가 관심을 끄는 것인데요. 나라마다 그 관심사나 취향은 다 다른데 정부에서 한류를 이야기하면서 공급자 중심으로 소개한다는 식으로 가면 문화제국주의나 문화침략주의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요. 긴호흡을 갖고 문화적 다양성 안에서 한국사회 한국문화를 알리자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_그런데 한류에도 싸이는 성공하고 원더걸스는 실패했어요. 왜 그런 차이가 생길까요?
"사실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도 왜 성공하는지 몰라요. 결과를 되짚어보면서 어떤 게 그들의 정서에 받아들여졌다는 걸 파악할 뿐이지요. 문제는 우리가 싸이가 성공한 이야기는 많이 해도 원더걸스가 실패한 이야기는 없어요. 그걸 알아야 똑 같은 실패는 하지 않을텐데요."
_실패로부터 배운다, 원론적인 이야기는 많이 하지요.
"그런데 현장에서 실제로 원인을 찾지는 않아요. 작년 겨울에 재팬파운데이션 초청으로 보름간 일본을 가볼 기회가 생겼어요. 원하는 것은 다 보여준다길래 미안하지만 일본의 실패한 사례를 보고 싶다고 열 몇 군데를 적어냈어요. 그랬더니 그들 스스로 더 얹어서 스무군데를 보여줬어요. 그 중에는 나가사끼에 있는 하우스텐보스라고, 한국에는 '꿈의 테마파크'로만 알려져 있는 곳도 있었어요. 알고보니 여기가 만든 이후 한번도 흑자를 내본 적이 없대요. 여기 뿐 아니라 테마파크 가운데 도쿄디즈니랜드하고 오사카의 유니버설스튜디오 말고는 다 적자를 보거든요. 오사카도 최근에야 흑자로 돌아섰고요. 문제의 핵심은 과잉투자였어요. 지금 우리나라에도 제주도 같은 데서 나타나거든요. 일본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첫 마디가 그거에요. 자기네는 정치인하고 지역관리들하고 결탁을 해서 시설에 과잉투자를 해서 망했다. 불필요한 도로와 시설을 경기가 한참 좋을 때 마구마구 지었는데 경기가 나쁘니까 관리비만 들어가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걸 똑같이 따라가고 있어요. 여수엑스포 끝난 다음에 과잉투자된 시설을 어떻게 운영을 할 것인가. 일본에서 성공했다는 나오시마와 니카다의 산골마을인 에티고쯔마리인데 여기는 과잉투자를 하지 않고 지역민들이 원하는 것을 해줬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대시설을 만들면서 지역민들을 쫓아내요. 일본내 스키리조트도 경기가 좋을 때 과잉투자되어서 운영하지 못하는 데가 대부분이었어요. 평창 올림픽 준비를 할 때도 참고해야 해요. 제가 공무원 그만 둔 해부터 방학 때면 도로를 따라 걸었어요. 강릉에서 동해안을 따라 걷는 7번 국도가 있어요. 옛날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놔두고 새로 고속도로를 냈어요. 옛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문닫은 가게가 3분의 1이 넘어요. 여수도 여수엑스포 한다면서 고속도로 냈잖아요. 그 도로는 누구를 위해서 뚫은 거지요? 우리나라를 구석구석 보자, 캠페인 아무리 해도 천천히 살자, 천천히 살아도 좋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거에요. 관광도 계속 거대한 리조트 개발하는 식으로 하는 건 폭탄 돌리는 짓이에요. 우리 국민들이 그걸 막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해요."
_그런데 사대강도 그렇고 사실은 가장 강력한 파괴자들이 정부잖아요.
"맞습니다. 공무원들이 지역업자하고 결탁해서 과잉투자를 해요."
_사람들은 의식이 높아졌는데도 공무원들이 계속하는 건 어떡해야 하지요?
"그걸 막아야지요.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봐요. 그런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정부에 없어요. 그러니까 다음 정부는 그런 정부가 들어서게 만들어야지요. "
_그래서 이번 정부의 홍보수석과 문화부 장관을 거절한 겁니까?
"(희미한 웃음) 장관은 그 사람들이 인선에 올렸는지는 몰라도 제가 들은 말은 없고요. 홍보수석은 거절했어요. 제가 79년에 문화공보부를 들어갈 당시 행시 출신은 주로 공보파트로 보냈어요. 정권 홍보가 중요할 때니까. 그런데 저는 신념에 어긋난 일은 하고 싶지 않아서 문화행정만 하겠다고 했고 다행히 상사들이 받아줬어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일반직은 보내지 않던 국어연구원에 보내더라고요. 그건 보통 나가달라는 뜻이라는데 저는 거기 있다가 교육을 받으러 나갔다 왔어요. 왔더니 박지원 장관이 부임해서 저를 공보관으로 부르셨어요. 그 때 공보 일을 처음 했어요. 장관과 공보관은 서로 판단이 다를 수가 있어요. 그걸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판단이 다르게 발표를 하면 장관이 막 화를 내요. 나중에는 '일은 잘하는지 몰라도 충성심이 부족해.' 이래요. 제가 두번까지는 참았는데 자꾸 그러길래 '저한테 국민이나 국가,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이야기하는 거면 받아들이겠다. 그런데 정권에 대한 충성심, 정치적인 충성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못 받아들이겠다' 그랬어요. 이 양반이 화를 내고 나가라고 하더니 30분 뒤에 다시 불러요. '내가 생각해보니까 당신 말이 맞다. 내가 앞으로 정치적인 거는 충성 이야기 안 하겠다.' 그때부터 서로 진짜 신뢰하게 됐어요."
_여러 장관 모셨는데 어떤 장관을 좋은 장관으로 기억합니까?
"최병렬 김영수 박지원 정동채 장관을 존경해요. 그러고 보니 노태우정권 때부터 노무현 정권 때까지 정권마다 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장관들이 있었네요.(웃음) 이 분들을 꼽은 이유가 직원을 신뢰하고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서 방패가 되어주고 직원들이 소신을 갖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_다음 정부, 다음 문화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공무원과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공무원들한테 혁신을 강조했는데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내부에 신뢰를 통한 소통이 되지 않으면 그래서 자발적인 협조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방법만을 강요해요. 그 때 해양경찰청이 우수혁신부서로 꼽혔는데 바다에 많이 나간 게 아니라 책상에 앉아서 보고서를 열심히 썼어요. 노무현 정부 시절에 국민들의 의식이 많이 올라갔다는 것은 동의해요. 그런데 (권력을 잡은) 그들 스스로는 의식이 올라가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라고 보거든요. 대통령은 인사청탁을 거절하라고 말했지만 제가 인사청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뒷조사를 받았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노무현 정부는 기본 가치관을 외쳤지만 속으로는 지키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기본 가치관을 아예 겉으로도 패대기를 쳤어요. 심각한 문제에요. 다음 정부가 할 일은 다시 공동체가 지켜야 할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런 비전을 제시하는 정부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덕적 기준은 엄격해야 한다, 그건 기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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