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두 가지 낭보가 날아왔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런던 올림픽 종합순위 5위와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Aa3) 상향 조정이 그것이다. 이는 한국이 스포츠 강국이자 신용등급 강국으로 도약했다는 의미다.
둘 중 무엇이 더 의미 있을까. 경중을 논하기엔 두 가지 모두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만 필자의 입장에선 후자가 훨씬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무디스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한국의 신용등급을 Baa3까지 떨어트렸다. Baa3는 투자하기엔 위험한 나라라는 의미다. 당시 필자는 옛 대우증권의 런던 법인에서 일했다.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거래처도 일방적으로 거래 중단을 통보해 왔다. 네트워크는 모두 망가졌고 필자도 런던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지금, 일본과 같은 등급이 됐다니…(또 다른 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이 일본의 신용등급을 추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냥 이런 상황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최근 세계 경제는 마치 초대형급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덮치기 직전과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중국 쪽이 심상치 않다. 상하이종합지수는 2008년 12월 이후 최저점에 머물고 있다. 중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부각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모습이 많이 퇴색했다.
그동안 중국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그 덕을 톡톡히 봤다. 문제는 중국이 지금까지처럼 고성장을 얼마나 더 이어갈 수 있으며, 한국 경제와 동반자적 관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3월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에서 원자바오 총리가 경제성장 방식을 ‘수출’ 주도에서 ‘내수’ 확대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나타났던 현상이다. 일본은 수출을 통한 성장이 한계에 부닥치자 73년을 전후해 내수시장 위주의 산업구조로 바꿨다. 한국도 97년을 전후로 소비재산업의 성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가긴 했지만 경제성장률은 과거 8~9%대에서 3~4%대로 둔화됐다. 중국도 한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률이 과거 10%대에서 6%대 이하로 둔화할 것이다. 주변 수혜국의 앞날도 같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섣부른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을 지렛대 삼아 경제를 발전시킨 것처럼 중국의 변화에 한국이 잘만 대응한다면 미래의 10년도 밝아질 수 있다. 그동안 중국을 산업재 수출기지로 활용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최종 소비재 수출과 문화·관광·의료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개척할 수 있는 시장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중국에 대한 소비재 수출이 강화돼야 한다. 과거 한국 수출의 대부분은 원재료와 자본재였으나, 향후 소비재 기업의 적극적 진출로 제2의 락앤락·이랜드와 같은 기업이 계속해서 나와야 한다. 둘째, 최근 한류나 K팝 열풍 등에 힘입어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급증하고 있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 2009~2011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의 연평균 증가율은 20%를 웃돈다. 올해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2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전체 중국 해외 관광객의 5%에 불과하다. 더 많은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호텔 등 관광 인프라를 중국인의 기호와 눈높이에 맞춰 확충하고 개선해야 한다. 또 ‘쇼핑 한류’를 발판 삼아 중국인에게 인기 있는 한류 브랜드를 육성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사례에서 보듯이 카지노 산업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한국이 국제 경쟁력이 있는 의료관광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높인 이유로 수출을 동력으로 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꼽았다. 한국이 10여 년 동안 중국 경제 고도성장의 기회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잘 활용해 왔다는 의미다. 따라서 한국의 미래는 변화하는 중국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은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결국 최고 신용등급(Aaa)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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