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선 ‘김영란법’ 이미 시행
공무원이 금품받으면 직무관련-대가성 불문하고 뇌물죄로 형사처벌
돈-향응 받은 ‘스폰서 검사’, 승용차 받은 ‘벤츠 여검사’
무죄판결 또 안나오게 하려면 김영란법 통과가 절실하다
이른바 김영란법은 형법의 뇌물죄 요건이 너무 엄격하여 금품을 받은 공무원이 처벌이 안 되는 부패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부패의 근원을 방지하기 위해 선진국이 마련하고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국회에서 이 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이유는 이 법률이 통과되면 청탁과 이권 개입으로 이득을 얻어 오던 무리들의 음성소득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때문일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인테그리티(integrity)’라는 단어를 매우 강조한다. 윤리 관련 규정과 부패 방지 법규에는 이 단어가 꼭 등장한다. 주로 ‘청렴성’으로 번역되지만 ‘고결성’이 더 적합할 것 같다. “고결성만큼 신성한 것은 없다”(에머슨) “고결성은 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행동에서 나온다”(베이컨) 등 고결성을 강조하는 경구가 많다.
선진국에서는 학교와 기업, 공직사회, 전문직과 리더십 교육 과정 등에서 이 고결성 덕목을 반복해서 교육하고 강조한다. 국제 거래와 기업에서도 법규와 윤리규정 준수를 의미하는 ‘컴플라이언스 의무’가 강조된다. 고결성을 손상시키는 행위는 중대 사안으로 다룬다. 필자가 하버드 로스쿨에서 공부할 때도 ‘인테그리티’를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것을 보았다. 부패 방지를 위한 국제규범에서도 고결성은 핵심 가치로 등장한다. 국제투명성기구는 “부패 방지를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인테그리티상’을 준다. 유엔 반부패협약에서도, “부패와 싸우기 위해, 각국은 공직자들에게 고결성, 정직성을 장려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동양에서도 군자는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는 신독(愼獨)을 강조했다(대학과 중용). 우리나라에서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도 신독을 강조했다. 이순신 장군은 신독 정신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공직자였다. 우리도 선비정신과 같은 고결한 인격수양의 전통이 있음에도 오늘날에는 고결함의 전통과 가치가 크게 퇴색되어 가고 있다.
고위공직자의 탐욕과 부패, 부정직함이 지나쳐서 하위 공직자들의 일탈 행위는 말할 것도 못 된다. 헌법재판소장 대법원장 대법관 등 가장 고결해야 할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조차 ‘황제 전관예우’를 활용하여 과도한 사익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축첩행위와 혼외자식을 은폐하기 위해 대국민 거짓말 행진을 펼친 전 검찰총장, 3억 원대 금품과 2000만 원대 시계를 받고도 이것을 취임 축하선물이라고 강변하는 전 국세청장도 우리 사회의 고결성을 무참히 짓밟은 사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부패의 근원을 척결하기 위해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이른바 김영란법)’의 통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법안은 공직자의 부정 청탁과 이해충돌 행위, 금품수수 행위를 금지하고 금품수수가 100만 원을 초과할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법률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뇌물죄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만 있을 뿐이고, 부정 청탁과 이해충돌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우리나라의 뇌물죄는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엄격히 요구해서 고액의 금품을 받은 공무원이 무죄 판결을 받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건설업자로부터 현금 100만 원과 140만 원대의 향응을 받은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에서도 향응수수는 인정되나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났다. 내연 관계의 변호사로부터 500만 원대의 샤넬 백과 신용카드 및 벤츠 승용차를 제공받은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에서도 청탁 관련이 아니라 ‘사랑의 징표’로 받은 것이라는 해괴한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났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다. 미국 영국 독일에서는 공직자가 정부 급여 이외의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대가성을 불문하고 뇌물죄로 형사처벌한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 제공까지 형사처벌한다. 캐나다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법규를 마련하고 있다.
‘고결성’을 중시하는 국가 사회를 만들지 않고는 부패를 척결하기 어렵다. 존중받는 국가는 더욱 요원하다. 김영란법의 통과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읊은 해맑은 시인 윤동주의 고결성이 더욱 그립다.
배금자 객원논설위원·변호사
http://news.donga.com/3/all/20140613/64226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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