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3. 15:59

한글날이 22년 만에 다시 공휴일이 된다. 경제계는 한글날 공휴일 지정에 반대 입장을 밝혔었다. 일하는 날이 하루 줄면 그만큼 경제가 나빠진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눈앞의 손익 계산만 따질 일은 아니다.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니라 문화를 판다는 말처럼 세계시장에서 문화가 만들어내는 마케팅 효과는 날로 커지고 있다. 한류가 그렇지 않은가? 한류의 뿌리인 한글과 한국말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는 지금, 한글날의 공휴일 지정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힘을 우리 경제에 실어 줄 수 있다.

종교개혁부터 시작된 서구의 근대화 과정은 자국어 발전 및 문자 대중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중세 교회가 10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할 수 있었던 비결은 '신의 힘'보다는 '신을 독점하던 힘'에 있었다. 교회가 성서 해석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지술과 인쇄술이 발전하고 독일의 루터와 영국의 틴들 등이 라틴어 성서를 자국어로 번역하여 보급하자 교회 권력은 맥없이 무너졌다.

이들의 번역 작업은 종교개혁이라는 성과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까지 변두리 언어였던 영어·독일어 등이 정비되고 셰익스피어나 괴테 같은 대문호가 나타나 변두리 민족의 품격을 올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세속 학문의 성과가 자국어 문헌으로 보급되면서 유럽은 과학혁명을 거쳐 산업혁명으로 나아간다. 여기에다 언어 교육을 중시했던 보통교육이 발전하면서 서양과 동양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근대 서구의 문자 교육은 시민의 지식을 키우는 동시에 생산력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었다.

6·25전쟁 뒤에야 보통교육이 자리 잡은 한국이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르게 성장한 이유 중 하나도 한글이라는 문자였다. 어느 나라 글자보다 익히기 쉬운 한글이라는 축복 덕분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고, 양질의 노동력이 산업현장과 손쉽게 결합했다. 이런 점에서 한글은 분명 경제성장의 발판이었다.

이제 한류 시대가 오면서 한글의 지위가 달라지고 있다. 세계인에게 한글은 문맹 퇴치의 상징을 넘어서서 한류 문화를 대표하는 시각적 상징이 되고 있다. 세계인의 눈길은 그 존재조차 몰랐던 변두리 언어인 한글과 한국말에 쏠리기 시작했고 관심은 폭발적이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보급하는 세종학당은 2009년 6개국 17개소였던 것이 2012년에는 43개국에 90개소로 늘었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세종학당에 배우러 오는 외국인의 동기는 한류(34.3%)와 한국어에 대한 관심(27.2%)이 이전의 주요 동기였던 취업과 같은 경제적 요인(14.9%)보다 훨씬 높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한국학과를 설치한 외국 대학은 2010년 57개국 688개에서 1년 만에 81개국 810개로 크게 늘었다.

한글이 과학과 애민사상의 융합이고 한국이 한글날을 공휴일로 기린다는 사실은 외국인에게 분명 문화 충격으로 다가갈 것이다. 그 충격은 세계인이 구찌의 장인 정신에서 느끼는 신뢰나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신세계에 갖는 호기심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 즉 '사람 사랑'의 향기를 맡도록 자극할 것이다. 한글을 소중히 생각하고 발전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성공한다면 세계인은 한국 상품에서 가격이나 품질보다 품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제 효과는 기업이 붓는 마케팅 비용에 비할 바가 아니리라. 기업들도 자기 글자 만든 날을 공휴일로 기념하는 우리 민족의 문화 품격을 세계시장에서 경제 효과로 이어내길 바란다. 변두리 언어였던 영어와 독일어가 강대국을 만들었듯이 우리말과 글이 한국을 더욱 강한 나라로 만드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12/2012121202788.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