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26. 17:13
외부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권력 구조. 누가 실질적 정권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가족도, 친척도 안전하지 않은 반복된 숙청. 어제 최고의 권력자가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고 감옥살이를 할 수 있는. 아들이 아버지를, 삼촌이 조카를,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는 사회. 2013년 북한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터키 민족 오스만 제국에 1453년 점령당하기 전까지 1000년 넘게 지중해 동쪽 국가들을 통치하던 비잔틴제국 이야기다.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콘스탄티누스 1세(272~337) 황제는 로마제국의 수도를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는 비잔티움으로 옮기며 동로마제국(훗날 비잔틴제국)의 시대를 연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모든 권력을 손에 넣은 콘스탄티누스는 아들과 아내를 사형시킨다. 전 아내 사이에 난 장남 크리스푸스가 새어머니인 파우스타와 연인 관계였다는 이유였다. 그런가 하면 황제 레오 4세의 아내 이레네 사란타페카이나(Irene Sarantapechaina·752~803)는 남편이 죽자 어린 아들의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들고 자신이 비잔틴제국 첫 여자 황제가 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8세의 딸 조에 포피로게니타(978~1050)는 남편을 살해하고 자신보다 수십 년 어린 2명의 새로운 남편들을 앞세워 실질적 권력을 유지하기도 한다.


권력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야 할 엄마가 아들을 장님으로 만들고 아버지가 아들을 사형시키는가? 법으로 통제되고 사회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합법적 권력은 물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도력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 없이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임도 통제도 존재하지 않는 비잔틴제국 같은 무한 권력은 인간을 야생동물로 만드는 듯하다. 왜 그런 걸까? 아마도 억제되지 않는 권력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중독성이 높기 때문일 거다. 인간이 즐길 수 있는 대부분 것은 반복하면 할수록 만족감이 떨어진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 먹을수록 예전만큼의 맛을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권력만큼은 다르다. 권력이란 결국 타인의 행동을 나 자신에게 이득 되도록 제어하는 힘을 말한다. 더 많은 사람을 제어하면 할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이득도 많아진다. 항상 같은 사람을 통한 동일한 이득이 아니기에 '수확 체감(law of diminishing return)' 같은 문제도 없다. 타인의 제어 덕분에 나는 보상과 이득을 얻을 수 있기에, 뇌는 '보강 학습' 메커니즘을 통해 중독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한번 무한 권력을 맛보면 더 이상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말이다.


술·담배·마약·비디오게임의 중독성을 걱정하는 우리.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우리 북쪽에 수십 년 동안 무한 권력의 맛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김대식 KAIST 뇌과학 교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3/2013122304501.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