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5. 20:16


저녁 무렵 슬그머니 풀잎 정상을 향하는 개미들이 있다. 그들은 새벽까지 풀잎을 꽉 깨물고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뭔가 이유 있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행동 때문에 개미는 풀을 뜯기 시작한 양이나 소에게 잡아먹힌다. 마치 ‘나 잡아 드세요’라는 자살 행동 같다. 개미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비밀은 ‘창형 흡충’이라는 기생충에게 있다. 이 기생충의 ‘꿈’은 번식의 파라다이스인 양의 위장에 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그 꿈을 이룰 능력이 없다. 그래서 개미의 뇌를 감염시켜 양에게 쉽게 잡아먹히도록 개미를 조종하는 것이다.


이 무서운 이야기는 곤충을 넘어 포유동물까지 이어진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심하게 용감해진다. 대개 고양이 오줌 냄새를 맡은 쥐는 고양이의 존재를 느끼고 도망가는데 이 감염 쥐에게는 그런 공포감이 발현되지 않는다. 고양이의 위장에 가서 맘껏 번식하는 것이 최종 목표인 톡소포자충이 쥐의 행동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요즘 극장가에 <연가시>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는 꼽등이나 사마귀 같은 육식 곤충의 뇌를 감염시켜 물가에 빠뜨리게 하는 기생충 연가시에 대한 실제 사실을 모티프로 삼았다. 그리고 연가시가 사람의 뇌를 감염시켜 물속으로 뛰어들어 자살하게 만든다는 허구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곤충의 내장을 파먹으며 성장하는 연가시는 번식을 위해 물가로 가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운반자들이 자발적으로 물가로 가줄 리 없다. 기생충학자들에 따르면 이때 연가시가 곤충의 신경계를 조작하여 물속에 뛰어들게 만드는 특수 단백질을 분비한다고 한다. 영화 관객들은 이 기생충이 실제로 사람의 행동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조종할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물론 이런 비슷한 사례가 보고된 바는 없다. 아직은 그럴듯한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이 영화는 우리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을 감염시켜 결국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연가시 같은 생물 기생충 말고 ‘멘탈 기생자’ 같은 것은 없을까? 멀쩡했던 사람을 비상식적 고집불통이 되게 한다든지, 목숨 건 투사로 만든다든지, 심지어 자살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말이다. 종교와 정치가 아닐까?


물론 종교의 모든 교리들이 멘탈 기생자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은 정말 그렇다. 세상의 지식이 어떠하든 자신들의 종교적 교리만이 진리라는 믿음은 ‘멘탈 연가시’다. 이른바 사이비종교 단체에 몸과 마음과 가정을 모두 빼앗긴 분들도 감염자들이지만, 종교적 교리와 열정 때문에 과학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삭제하는 일에 삶을 헌신하고 있는 ‘멀쩡한’ 분들도 사실상 감염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보수에 대한 비판은 곧 빨갱이 짓이라는 생각, 세상의 현실이 어떠하든 시장(市場)은 옳다는 믿음, 절차가 어떻든 목표가 완수되면 정당하다는 관념,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멘붕에 빠뜨리는 ‘멘탈 연가시’다.


해결책은 있는가? 영화에서처럼 연가시에 모든 사람이 감염되진 않듯이, 멘탈 기생자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감염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희망이 있다. 사실, 인류의 진화에서 큰 뇌가 출현한 이후에 멘탈 기생자가 없는 지적인 환경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의 뇌는 그만큼 취약하다. 그러니 멘탈 기생자에 능히 견딜 수 있는 지적 강인함과 감성적 면역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온갖 현란한 구호가 뇌를 유혹하는 요즘에는 말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431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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