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22:25

나는 요즘 몹시 황망하다. 압구정동 번화가에 밤마다 동양하루살이가 떼로 날아들어 시민들이 고통을 호소한단다. 다짜고짜 "박멸해야 할 해충"으로 낙인을 찍는 것은 물론, "혐오스러운 생김새에 보기만 해도 끔찍하다"며 몸에 달라붙자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린 여성도 있단다. 독자들로부터 종종 색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며 참신한 글을 쓴다는 평을 듣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정말 이렇게 다른가 싶어 황망하다.

하루살이는 내가 풀잠자리 다음으로 좋아하는 곤충이다. 일찍이 '과학자의 서재'에서 밝힌 대로 나는 방황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던 대학 시절 마침 한국을 방문하셨던, 당대 세계 최고 하루살이 전문가인 미국 유타대학의 조지 에드먼즈 교수님의 조수 역할을 하며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찾아 오늘에 이르렀다. 하루살이는 내게 삶의 길을 밝혀준 '팅커벨'이었다. 조지훈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꼬리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날개는 마치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 같이 생긴 우아한 곤충이다. 내겐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사 같은 곤충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라니….

오랫동안 물속에서 유충으로 살다가 우화하여 물 밖으로 나오면 그저 며칠밖에 못 사는 하루살이는 입이 퇴화하여 물지도 못한다. 병균을 옮긴다는 보고는 단 한 번도 없는, 비교적 깨끗한 물에서 살다 나온 깔끔한 곤충이다. 다만 최근 들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날아들어 징그러운 모양이다. 고려대 생명과학과 배연재 교수의 연구진에 따르면 동양하루살이는 원래 우리나라에서 1년에 세 차례에 걸쳐 우화했다. 4월 말에서 5월에 산란한 무리는 그해 8~10월, 6~7월에 산란한 무리는 이듬해 4~5월경, 그리고 9~10월에 산란한 무리 역시 이듬해 6월쯤 성충이 되었다. 그러던 것이 아마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 때문에 따뜻한 시기에 발생 과정을 거치는 무리가 상대적으로 빨리 발육하면서 결국 우화 시기가 서로 겹치게 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기후변화의 추세를 되돌릴 수 없다면 이런 일은 앞으로 더욱 자주 벌어질 것이다. 약을 뿌려 없애기보다 공존할 방도를 찾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최고의 번화가 로데오 거리의 하루살이 생태 축제를 기획해보고 싶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3/2013060303160.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