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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星 패배'의 의미

겟업 2014. 10. 10. 15:45

1980년대 후반 이건희 삼성 회장이 현명관 호텔신라 전무에게 "호텔업(業)의 특성이 뭐냐"고 물었다. 현 전무가 "서비스업이 아니냐"고 대답하자 이 회장은 지나가는 말투로 "제대로 한번 보세요"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호텔이나 백화점을 단순한 서비스업을 넘어서 장치 산업이자 부동산업이라고 진단했다. 호텔이나 백화점이 주변 개발로 연결되는 만큼 부지 선정에 각별히 유의하고 먼 미래를 보고 사업을 하라는 뜻이었다.

이처럼 삼성은 고(故) 이병철 창업 회장 때부터 부동산 개발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삼성 초창기 서울 태평로 일대에 본사를 두고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를 국내 최대의 자연농원으로 개발한 것, 2000년대 들어서 고급 아파트의 상징인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서초 사옥을 잇달아 건립한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건희 회장 말대로 삼성은 단순히 빌딩이나 아파트를 짓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삼성은 한전 부지에 대해서도 오래전부터 관심을 기울여 왔다. 현재 서초 사옥의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잦은 데다 너무 번잡한 지역이라서 전자 계열사들의 서울 사무소를 한전 부지로 이전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2009년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삼성동 한전 부지 일대를 복합 상업시설로 개발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2011년에는 삼성생명이 한전 부지 인근의 한국감정원 부지를 2328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삼성이 이번 입찰처럼 국내외에서 누군가와 맞대결을 해서 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충격이 컸겠지만 길게 보면 삼성이 잃은 것보다는 얻는 게 더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삼성 독식론(獨食論)'처럼 삼성으로의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만약 삼성이 서초 사옥에 이어 테헤란로 반대편에 있는 한전 부지까지 차지했다면 승자 독식을 우려하는 정서를 해소하기 위해 향후 엄청난 사회적·정치적 비용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삼성은 부동산 개발을 놓고 재계의 파트너인 현대차그룹과 경쟁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 애플과 중국 저가(低價) 스마트폰의 공세에 대응하는 것이나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같은 것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다. 삼성에는 뛰어난 전문경영인이 많이 있고, 이런 비즈니스적 대응은 삼성 스스로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 즉 이건희 회장의 장기 부재(不在)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3세 경영 체제를 무리 없이 안착(安着)시키는 것은 삼성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 정부와 여론은 물론이고 재계에서도 삼성을 후원해줘야 한다. 당장 연말까지만 해도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증시 상장이라는 숙원(宿願) 사업이 걸려 있다. 또 갈수록 커지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기업과 시장경제에 대한 부당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삼성은 사회적 리스크를 나눠서 질 우군(友軍)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삼성은 이번 한전 부지 낙찰 탈락으로 작은 것을 잃었을 뿐이다.


조형래 산업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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